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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 설날 지리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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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혜림산악회 조회3,160 작성일15-02-23 14:39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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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산에 다니면 감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소리 탕탕 쳤는데 한 달 동안 계속 기침에 가래에 코가 막히고 가끔씩 열이 나고 있다. 쓰러져 누울 정도는 아닌데 적당할 만큼 귀찮게 만드는 것이다. 한 2, 3일 정도 푹 쉬고 음주 자제를 한다면 좋아질 것 같은데 ‘제반 여건이 그걸 허락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낯짝 두꺼운 핑계가 될 것인가? 설 연휴 마지막 토, 일을 이용해서 1박 2일 지리산 산행을 계획했다. 원래는 대성골 임씨댁에서 1박을 하고 세석대피소를 거쳐 쌍계사로 내려올 계획이었는데 지리산 주능선이 2월 16일부터 4월 말까지 입산 통제가 되었다. 휴식 기간인 모양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백무동으로 해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토요일 아침, 코는 맹맹하고 몸도 찌뿌드드하다. 약간 오한이 날 것 같기도 해서 체육관에 가서 조깅머신을 한 시간 정도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궜다. 출발시간이 14시라서 오전에는 시간이 조금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몸이 약간 풀리는 것 같다. ‘울트라셋’ 두 알을 삼키고 배낭을 챙겨 하단 로터리로 간다. 비가 내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내리는 이 비는 내일 오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두 21명이 버스를 타고 하단 로터리를 출발했다. 설 연휴가 길어서 교통량이 많이 분산이 된 모양이다. 큰 어려움 없이 백무동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여기서 1박을 하고 아침에 장터목을 향해서 출발할 예정이다.


몸 컨디션은 여전히 고만고만한데 모두들 괜찮냐고, 그래서 내일 산행이 되겠냐고 걱정을 해준다. 저녁이 되니 컨디션이 조금 더 떨어지는지 코가 더 맹맹해지면서 머리도 띵하다. 버스에서 짐을 옮기고 모두들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석화를 굽는다, 닭백숙을 삶는다하며 왁자지껄 만찬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치 사진 속 배경처럼, 멀리 떨어진 풍경을 보듯이 나는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움직임만 보이는 것 같다. 숱한 젓가락질과 술잔이 돌아가는 모습,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모습, 박수를 치는 모습. 한 장의 사진이다. 아직 8시가 덜 된 시각,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서 ‘울트라셋’ 두 알을 또 삼키고 잠을 청한다. ‘내일은 제발 괜찮아야 할텐데 ..’


아침을 떡 만둣국으로 때우고 산행을 준비한다. 새벽녘에 깰 때만 해도 두통이 조금 있었는데 떡 만둣국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온 몸에 땀이 흐르면서 몸이 개운해 진다. 이게 약 기운인지 만둣국 기운인지 헷갈린다. 아침 8시 20분, 비교적 상쾌한 컨디션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백무동에서 장터목까지는 5.8킬로이다. 3.8킬로 까지는 계속 오르막이고 그 뒤로는 능선이라서 비교적 수월하다. 비는 이미 그쳐있고 자욱한 안개를 헤치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출렁다리를 지나면서는 오르막길이 온통 빙판으로 덮여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간다. 때 늦은 겨울인데 제대로 겨울 산행을 하는 것 같다. 빙판과 눈길을 헤치면서 계속 올라간다.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기침가래가 튀어나온다. 감기를 오래 하다 보니 기관지염이 된 모양이다. 입김을 훨훨 뱉으면서 계속 오르막을 치고 올라간다.


아직도 자욱한 안개는 숲을 감싸고 있고 수북이 쌓인 흰 눈과 시커먼 바위 덩어리들이 한 겨울 지리산의 속살처럼 불투명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완벽한 무채색의 세상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거센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와 함께 가끔씩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이내 그 속을 파고든다. 날씨가 좋아질 것 같다. 웅웅거리며 힘차게 돌아가는 내연기관처럼 거친 호흡으로 계속 오르막을 치고 올라오다보니 어느새 어디로 도망갔는지 두통도 기침도 딴 사람 얘기가 돼버린 것이다. 세찬 맞바람을 맞으면서 어느 정도 걸었나 했는데 성큼 눈과 안개 속에서 갑자기 왠 집이 하나 나타난다. 장터목 대피소다.


12시, 대피소에 들어와 점심을 먹는다. 20명이 한꺼번에 대피소에 들어와 점심을 준비하는데 가관이다. 먼저 김치찌개를 끓인다. 한 솥 분량의 미리 익혀서 가지고 온 김치찌개를 다시 데우는 것이다. 이 분량을 지고서 올라오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다른 한 쪽에서는 한우 소고기를 굽는다. 아침에 밥을 해서 비닐봉지에 나누어 밥을 지고 왔다. 밥과 함께 김치를 잘라 넣고 삼겹살을 구워 볶음밥을 만든다. 넓지 않은 대피소 공간에 김치찌개 냄새에 한우 소고기 굽는 냄새, 김치 볶음밥 냄새로 온통 제 정신이 아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입을 딱 벌리고 정신없이 이 난데없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것 같지만 일부는 비웃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먹으러 온 것도 아니고 무슨 산행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는 말이겠지.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안나푸르나 등정을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들은 그들 식대로,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산행을 하는 것이고 산행에 모범 답안은 없는 것이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제석봉을 오른다. 점심을 먹는 동안 날이 완전히 개어서 흰 눈과 새파란 하늘로 완벽한 겨울 산을 보여주고 있는데 빈속으로 올라도 힘든 제석봉을 배를 채우고 오르려니 두 다리가 한 짐인 것이다. 작년 여름에 종주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잠도 오고 정말 힘든 구간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것이, 이 완벽한 겨울 산의 모습을 보고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찬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파란 하늘은 더 완벽하게 새파래진다. 멀리 영신봉과 노고단의 모습이 보인다. ‘작년 여름, 우리가 노고단에서 시작했었지’. 멀리 노고단을 보면서 그때 우리가 걸어왔던 길과 오늘 또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전혀 또 다른 길인 것 같다. 우리 인생도 그럴 것이다. 한 번 실수하고 또 그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한 번 하면 실수이고, 두 번 하면 습관이고 세 번 하면 그때부터는 철학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


14시, 천왕봉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흰 눈과 시커먼 암릉, 그리고 하얀 구름이 얕게 깔린 새파란 하늘을 보았다. 우주에서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완벽한 겨울 지리산의 모습, 나는 이 광경을 사랑한다. 설날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산행에 참석한 우리 일행들은 아마 충분한 보상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나도 이 지긋지긋한 감기와의 투쟁을 끝내고 다시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마 꼭 그렇게 될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춥기도 하지만 너무 위험해서 더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서둘러서 하산하기로 하는데 내려가는 길이 얼어붙어서 상당히 미끄럽다.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 안전하게 천천히 내려오는 것은 기본이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씩 쉬면서 밀감도 까먹으면서 내려오는, 아름답고 멋진 일행들과 함께하는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즐거운 것일까?












 














 

 

 

 

총 2건 / 최대 200자

7

대단한 산악회의 대단한 등산이군요. 음력 새해 지리산에서 등산한다는것만 해도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즐감합니다.

여기부산님의 댓글

여기부산

ㅋ 감사함니더 ~~~

혜림산악회님의 댓글

혜림산악회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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