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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봉∼백암산 구간은 올망졸망한 암릉과 너덜겅을 뚫어내는 잔재미가 좋다. |
헉헉대며 정상에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시야. 그 하나만으로도 땀 흘린 대가는 충분하다. 굽이치며 내달리는 산줄기에 속이 후련해지고, 푸른 바다를 수놓으며 흩어지는 섬들이 만들어내는 풍광에 피로는 절로 잊힌다.
그런데, 요즘 정상에서 흔하던 감탄사가 귀해졌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뒤집어쓰는 날이 많아진 탓이다. 유장한 능선도, 반짝이던 섬들도 가뭇없기 일쑤이니 감탄 대신 한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소득 없이 땀만 흘린 꼴이 되었다고 산에 오르지 않을 수가 있으랴!
이번 주 산&산은 '공룡 나라' 경남 고성으로 떠난다. 향로봉(香爐峰·578m)과 백암산(白巖山·403m)을 에두르는 코스다. 올망졸망한 암릉을 뚫어내는 재미에다 산과 바다 조망이 일품으로 알려진 곳이다. 인접한 사천의 와룡산은 물론, 남해 창선과 사량도 지리망산을 거쳐 멀리 창원(마산) 무학산까지 손에 잡힐 듯하단다. 기대감에 부풀어 행장을 꾸렸다. 그런데, 부산 만덕터널을 빠져나가다 보니 벌써!, 또!, 미세먼지 때문에 백양산 윤곽이 흐릿하다. 아뿔사!
날씨 탓에 절경 감상은 훗날을 기약
1천300년 된 고찰 운흥사 들어서자
보제루 받치는 '그랭이 석축'에 압도
파도 물결 선명한 산중 퇴적 암릉 눈길
■드러누운 용 형상의 산세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를 감싸면서 고성 자란만을 내려다보는 산줄기는 마치 용이 누운 형상이라 예로부터 와룡산(臥龍山)으로 불렸다. 또 산 밑에 와룡사(臥龍寺)라는 큰 사찰이 있어 마을 이름에 '와룡'의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인근 사천의 와룡산(801m)의 이름에 눌렸는지, 향로봉을 아우르는 '와룡산'은 지도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 와룡산의 상봉인 향로봉이 사천 와룡산에 딸린 봉우리로 오해를 받는 까닭이다. 산행 들머리에서 만난 고찰 운흥사 안내판을 비롯해 대부분 그냥 '와룡산 향로봉'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산꾼들은 "대체 사천 와룡산과 어느 능선에서 이어졌나"라면서 연결 구간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굳이 '고성의 와룡산'으로 불러 구분해 봤지만 혼란이 말끔하게 걷히지 않으니 그냥 '고성 향로봉'으로 해두는 게 알아듣기 수월해서 그렇게 부른다.
산&산은 능선과 정상에 올라서 점점이 뿌린 남해바다의 섬과 주변 산세를 눈요기하는 콘셉트로 코스를 짜 보았다. 산행 기점과 종점을 와룡마을회관으로 잡았고, 원점회귀에 용이하도록 덕암산을 거치기로 했다. 요약하면, 와룡마을회관~운흥사~천진암~낙서암~비로봉~상두바위·애향교~향로봉 정상~백암산~와룡재~범우정골을 거쳐 와룡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노선이다.
■쨍하면 탁 트인 조망 압권
와룡마을회관 앞 공터가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다. 여기에 주차하고 운흥사까지 걸어가야 하산해서 차량을 회수하기가 수월하다.
마을회관 앞에서 와룡1교 못 미쳐 왼쪽 농로에 접어들었다. 밭뙈기와 계곡 사이로 난 길을 1.5㎞ 남짓 걸으니 1천300년 된 고찰 운흥사가 반긴다. 사찰 앞까지 시내버스가 들어오고, 대형버스도 다녀 주차장이 제법 넓다.
운흥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의 지휘 아래 승병 6천 명이 집결해 왜적과 맞섰던 호국사찰이다. 이순신 장군이 수륙양면 작전을 숙의하려 세 차례나 찾았는데, 아마도 그 결과가 고성 당항포 전투의 승전보로 이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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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랭이 공법으로 지은, 석축이 떠받치고 있는 천년고찰 운흥사 보제루. |
운흥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보제루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그랭이 석축'에 압도된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쌓을 때 제각각의 모양을 살려 끝을 깎아 맞추거나 작은 돌을 끼워 고정시킨 게 그랭이 공법이다. 자연미를 해치지 않아 산중에 고요히 들어앉은 고찰의 위엄과 어우러졌다.
왼쪽으로 빠져 천진암으로 오르는 길은 흙길과 포장도로가 경쟁하듯 나란히 내달린다. 낙서암까지 된비알에 맞서 싸워야 한다. 가파른데다 돌길이라 미끄럽기까지 하다.
낙서암을 지나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향로봉 정상으로 바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나아갔다. 전망대와 상두바위를 에둘러 정상까지 가는 길이다. 곳곳에서 암릉이 막아서고 너덜겅이 길을 끊어 놓지만 즐기면서 헤쳐 낼 정도다.
이윽고 전망대에 올랐다. "이런 낭패가…!" 시원하게 펼쳐져야 할 남해바다는 대체 어디로 숨었나? 지척이라던 사천 와룡산의 힘찬 산줄기도 실루엣만 달랑 남겨놓고 있다. 연신 셔터를 눌렀건만 깜냥이 될 만한 사진은 기대난망이다. 푸념이 절로 나왔다.
상황은 향로봉 정상에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높지 않아도 해안가라서 조망이 끝내준다는 명성도 미세먼지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말았다. 아득한 산과 바다를 속절없이 바라볼 수밖에….
향로봉 정상 이정표에서는 백암산 방향 표시가 없으니 주의. 지도상에서 뚜렷한 '백암산'은 현장에선 존재감이 전혀 없다. 수태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가다가 갈림길에서 직진. 전망하기 좋은 바위들을 거쳐 닿은 백암산 정상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표석도 없고, 리본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403m. GPS의 고도계로 정상을 확인했다. V자 모양의 소나무 가지에 부산일보 산행안내 리본을 두 개 묶어 표식을 남겼다.
멋진 풍광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뜻밖에 돌을 감상하는 것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얻었다. 깍두기처럼 썰어놓은 듯한 암석 군들이 있는가 하면, 층층 켜켜이 퇴적된 표면에 파도 물결이 선명히 남은 거대한 암릉을 산중에서 마주치니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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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흙길에 덩그렇게 놓인 퇴적암. |
백암산 정상을 지나 기묘한 형체의 퇴적암을 만났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오도카니 서 있다. 억겁의 세월, 풍상에 제 몸이 깎여 주변을 흙길로 만들고도 아직 바위의 위용이 남아 있다. 차곡차곡 쌓인 퇴적층계가 분명한 이 바위도 꺼풀이 더 벗겨지면 그 속 어딘가에서 공룡 발자국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리 멀지 않은 상족암 공룡발자국처럼.
하산길은 간명하다. 산길이 끝나고 임도로 합류한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고, 100m쯤 걷다가 임도를 버리고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동네 뒷산을 걷는 느낌으로 범우정골까지 이어진다. 산 아래 축사가 많아 짐승 짖는 소리가 길잡이 역할을 대신한다. 와룡마을회관까지 1.5㎞가량 걸으면 원점회귀.
이날 9.5㎞를 걸었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4시간 15분. 날이 맑았으면 분명 경치를 즐기느라 이보다는 지체됐을 텐데…. 아쉬워도 할 수 없다. 쨍한 날을 기약할 수밖에.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095.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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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향로봉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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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향로봉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산&산] <443> 고성 향로봉 산행지도
[산&산] <443> 고성 향로봉 가는길 볼거리
■찾아가는 길
사천나들목에서 빠져나와 3번 국도를 타고 주문교차로, 노례교차로를 거친다. 삼천포대교로를 따라가다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16번 지방도로 꺾는다. 봉형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나아가면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에 닿는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운흥사에서 원점회귀하는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향로봉·백암산은 행정구역상 고성군이지만 사천에 접해 있어서 사천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는 게 수월하다.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사천의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1688-3006)까지 40여 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요금 1만 100원. 2시간 걸린다.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 후문 앞 '스마일마트' 시내버스정류소에서 30번 버스를 타면 운흥사까지 20분 만에 갈 수 있다. 문제는 버스가 하루 3편밖에 없다는 것. 삼포교통(055-832-1992)에 따르면 오전 9시 27분 '부두'에서 출발한 뒤 7개 정류장을 7분 정도에 돌고 '스마일마트'에 도착한다. 이 버스를 타려면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 45분에 출발해야 약간의 여유가 있다. 7시 30분발 버스는 아슬아슬하다. 운흥사에서 나가는 버스는 오후 1시 45분이 막차다. 터미널과 운흥사가 멀지 않아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볼거리
경남 고성은 '공룡 나라'를 표방하고 있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여서다. 상족암군립공원과 고성공룡박물관(055-670-4451)에서 다양한 볼거리나 체험 행사를 만날 수 있다. 고성오광대의 명성에 걸맞게 한국탈 300여 점과 외국탈 240여 점을 갖춘 탈박물관(고성읍 율대리·055-672-8829)도 가 볼 만하다. 고성군 거류면 엄홍길전시관(055-673-2296)에서는 히말라야 16좌 완등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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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의 기점인 와룡마을회관.원점회귀를 위해 여기에 차를 두고 운흥사를 거쳐 향로봉~백암산을 거쳐 되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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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회관에서 와룡1교를 건너지 말고 왼쪽 농로를 접어들면 계곡 끼고 운흥사까지 1.5㎞ 남짓 걷는다.사천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가 운흥사 주차장까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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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흥사 입구.사천 시내버스가 운흥사 주차장까지 다닌다.운흥사는 1천300년된 고찰로 임진왜란때 사명대사의 지휘아래 승병 6천명이 집결했을 정도로 사찰 규모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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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그랭이 공법으로 지은 석축이 포근하다.산속에 고요히 들어앉은 천년 고찰의 위엄과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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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사 경내를 둘러 본 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화장실을 거쳐 천진암으로 닿는다.여기서부터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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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진암까지 차가 다니기 때문에 왼쪽으로 포장도로가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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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비알에 돌이 많아 숨이 차오른다.낙서암까지 이런 돌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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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서암을 지나서 갈림길을 만난다.바로 향로봉 정상으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고,비로봉과 상투바위를 에둘러 정상까지 가도 된다.전망을 즐기기 위해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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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으로 가는 길에 곳곳에서 암릉이 막아선다.아기자기하기도 하고,걷는 재미를 즐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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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나 긴 너덜겅이다.길을 잃지 않게끔 왼쪽으로 돌아가라는 흰색 팻말이 설치되어 있다.이 너덜겅은 나중에 정상 밑에서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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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에 섰지만 시원하게 펼쳐진 남해바다는 가뭇없고,사천 와룡산의 힘찬 산줄기는 실루엣만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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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추렴해 설치한 애향교.이 다리만 건너면 향로봉 정상 코밑까지 다가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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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봉(578m)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해안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조망이 좋다.인접한 사천의 와룡산과 상사바위를 비롯해 남해 창선,사량도 지리망산,의령 자굴산,마산 무학산까지 다 보여야하는데,이날은 미세먼지로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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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내려온 지 얼마안돼 갈림길이다.흐릿한 왼쪽이 아니나 직진으로 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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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란도와 사량도가 시원하게 펼쳐져야 하지만 미세먼지 탓에 가물가물하다.멀리 삼천포화력발전소는 희미한 실루엣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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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암산 정상은 쓸쓸했다.표석도 없고,리본도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403m GPS의 고도를 확인하고서야 정상인 줄 알았다. V자 모양의 소나무에 부산일보 리본을 두 개 매다는 것으로 표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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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묘한 모양의 퇴적암이 산행길 옆에 서 있다.공룡발자국으로 유명한 인근의 상족암 처럼 켜켜이 쌓인 그 속 어딘가에 공룡의 족적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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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에서 임도로 합류한다.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서 범우정골(심적사) 방향으로 본격 하산길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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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우정골 일대에는 축사가 많다.심적사를 거쳐 포장된 길을 따라 와룡마을회관까지 1.5km 걸으면 원점회귀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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