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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 자굴산은 중부경남의 최고봉이라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자굴산 북쪽에 인접한 한우산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갑을마을이 마치 분화구나 분지처럼 보인다. 한우산 활공장에는 창공으로 날아오르려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북적인다. |
왜 산에 갈까? 어떤 이들은 정상을 항해 전진하는데 의의를 찾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정에 섰을 때 거대하게 밀려오는 희열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냥 숲 속에 있어도 기쁨을 얻는다. 호젓한 흙길을 밟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전자는 '등반'이고, 후자는 '트레킹'에 해당될 것이다. 이 둘의 만족감에는 우열이 없다. 개개인의 취향, 선호가 있을 뿐이다.
중부경남권의 최고봉인 의령 자굴산(도堀山·897m)은 정상에서 동서남북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대도시와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데다,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 자굴산 정상 코밑인 650m 선상에 연장 5.7㎞의 둘레길이 생겼다. 주차장에서부터 발걸음을 뗄 수 있는데다 여차하면 정상까지 손쉽게 오를 수 있게 길을 터놓았다. 등반도 하고, 트레킹도 하고…! 입맛대로 자굴산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굴산에서 한걸음으로 이어지는 한우산(830m)과 엮으면 패러글라이딩이나 산악자전거도 즐길 수 있다. 자굴산에 가면 다양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상 바로 밑에 5.7㎞ 둘레길
접근성 좋고 깨끗한 환경 매력적
바람덩·절티재·둠베기먼당 등
사투리 스며든 지명에 정감
중부경남 최고봉답게 조망 시원
■경남 사투리 지명에 생생하게 남아
자굴산은 경남 의령의 진산이다. 산이름에 붙은 '자'(도)가 '성문의 망대'를 뜻하니, 성문위에 높게 설치된 망루 모양으로 우뚝 선 산이란 뜻이다. 가례면 갑을리, 대의면 신전리, 칠곡면 내조리 경계를 빙 둘러 우뚝하게 서 있는 자굴산은 우람한 황소의 머리와 길게 뻗은 몸통처럼 보인다고도 한다. 자굴산을 오르면 특별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순우리말뿐 아니라 경남 사투리가 지명에 생생하게 남겨져 산길을 걸으면서 그 뜻을 새겨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벼룩콧등, 베틀바위는 쉽게 그 의미가 연상된다. 반면 '질매재'나 '바람덩', '절티재', '둠베기먼당' 따위 정감이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는 그 뜻을 곱씹어봐야 한다.
마소의 등에 얹는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발음은 '질매'로 바뀌어 '질매재'로 남았다. '큰 돌'을 뜻하는 '덤'은 지굴산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예컨대 '망덤'은 '망(望)을 보는 바위'란 뜻이다. '터'를 뜻하는 경남 사투리 '티' 역시 '자굴티재' '절티재' 등에 두루 쓰이고 있다. 다만, '조푸샘'의 '조푸'는 두부를 일컫는 경남 사투리이고, '둠베기먼당'의 '먼당'은 '마루'를 뜻할 텐데, 의령문화원에 문의를 해도 그 전체적인 의미나 유래가 딱 부러지게 설명되지 않아 궁금증으로 남았다.
자굴산 산행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산&산 팀은 트레킹과 정상 등반을 골고루 즐길 수 있게끔 구성했다. 내조마을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여기서 걸어서 자광사∼질매재∼중봉(835m)∼정상은 등산로를 따라 오르지만 하산길에서 둘레길의 북사면 구간인 둠베기먼당∼절터샘을 돌기로 했다. 이어 남쪽 사면부터는 다시 능선을 따라 하산해서 원점회귀함으로써 등반과 트레킹의 맛을 두루 즐기는 게 이번 산행의 콘셉트다.
■중부경남 최고봉 조망 으뜸
자굴산 공영주차장에서 걸어 나와 양천마을을 거쳐서 자광사까지는 포장도로를 걷는다. 이 길의 왼편에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됐는데, 그림 같은 목재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햇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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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사면 둘레길 구간의 너덜겅. |
자광사 뒤편이 들머리다. 딱따구리가 낯선 인기척에 놀랐는지 연신 나무를 쪼았다. 질매재 이정표를 만나면서 능선길에 합류했다. 여기서부터 된비알의 도전이다. 말문이 막혔다. 헉헉~.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시선은 저도 모르게 바닥에 꽂혔다. 엉금엉금 기었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 조망이 으뜸이라니…!" 정상의 파노라마 뷰를 기대하면서 고통을 참아냈다. 보통 질매재~조푸샘~헬기장(614m·옛 봉화대) 구간이 선호되지만, 이날은 질매재~헬기장 구간을 바로 치고 올라간 것이다. 이 된비알은 산행코스 안내판에 빠져 있다. 길은 나 있지만, 험한 길이라 안내코스에서 빠진 것이다. 무난한 길을 원한다면 조푸샘을 경유하는 게 좋다.
달분재 이정표에서 길이 세 갈래로 흩어진다. 정상으로 나아가면 팔각정자를 만난다. 달분정이다. 창원(마산) 무학산이 어렴풋하다. 날씨가 좋으면 그 위로 금정산까지 보인다는데, 이날은 미세먼지 탓에 언감생심이다. 남해바다도 손에 잡힐 듯한데, 보통은 거제도까지 다 보인단다. 중부경남의 최고봉이라 주변에 가리는 게 없으니 조망이 으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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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분정을 지나서 만나는 둘레길 갈림길 이정표. |
그런데, 정작 '달분재'나 '달분정' 이정표에는 해당 지점에 대한 표시 없이 정상과 기종점 안내만 있어 아리송했는데, 나중에 둘레길 이정표로 가서야 '달분재' '달분정'라고 씌어 있어 허탈했다. 관리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베틀바위'를 지나 중봉(835m)에 올랐다. 철골 구조물에 산불감시CCTV와 초소가 설치되어 있다. '망루'라는 자굴산의 역할에 가장 부합되는 시설이 아닐까 싶다.
나무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꽤나 넓고 탁 트인 데다 고도감까지 즐길 수 있다. 파노라마로 조망한 주변 산군이 선명한 사진과 함께 설명이 붙어 동서남북 네 방향에 각각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실상은 갑갑하기 그지없다. 지리산은 지평선과 구름 사이에 잠겨 보이질 않고, 가깝다는 합천 황매산이나 가야산도 가뭇없다. 남해바다 역시 마찬가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나 쾌청한 조망을 누리지…!" 푸념이 절로 나왔다. 요즘 산정에 서서 선명한 산줄기를 조망하기가 참 어렵다.
북사면으로 조성된 둘레길로 하산했다. 둠베기먼당을 거쳐 절터샘을 잇는 구간이다. 나무계단이나 벤치 따위 시설들이 잘 갖춰져 걷기에 편하다.
나무계단에서 내려다본 갑을마을의 창공은 인상적이다. 마치 분화구나 분지처럼 밑이 움푹 파인 듯하면서 평평하고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양이다. 그냥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의 고도감이 느껴지는 창공이다. 실제 이 하늘을 날기 위해 조성된 한우산 활공장에는 패러글라이딩 마니아들이 북적인다.
북사면 둘레길은 빛이 들지 않아 발이 빠질 만큼 잔설이 많이 남아있고 찬바람이 쌩쌩 불어 귀가 시렸다. 남쪽 사면인 절터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눈은커녕 완연한 봄 풍경이다.
절터샘부터는 외길인데다 험하지도 않아 수월하다. 장승을 세워둔 쉼터를 거치면 솔숲을 만난다. 철분 성분이 많아서인지 붉은색이 감도는 흙길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도로와 만나면서 산길을 빠져 나온다. 산행을 알리는 표석에는 정상까지 3.2㎞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몇 백m 떨어진 주차장까지 걸어 원점회귀를 완성했다. 이날 등반과 트레킹을 합쳐 11.2㎞를 5시간 44분 동안 걸었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095.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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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 자굴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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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자굴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산&산] <442>의령 자굴산 산행지도(1/30)
[산&산] <442>의령 자굴산 가는길 먹을곳(1/30)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부산 서부터미널(1577-8301)에서 의령·합천 방면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7시 첫차를 시작으로 40분∼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의령시외버스터미널(055-573-2112)에서 내조마을까지는 내조·대의·천곡행 농어촌버스를 타면 되지만 오전 10시 10분, 오후 1시 등 하루 5차례에 불과해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처음부터 의령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치고 '의령 가례'를 지나 '의령 칠곡' 정류소에서 하차하는 게 낫다. 하차 지점에서 산행기점인 내조마을 정류장까지는 1.5㎞가량.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의령 칠곡' 표(요금 7천100원, 1시간 20분 걸림)를 끊고 오전 7시 40분이나 8시 30분 버스를 이용해 칠곡까지 가서 내조마을 산행기점까지 걸어간 뒤 5시간쯤 산행을 한다고 치면 오후 4시 전후에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의령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가 오후 4시 45분, 5시 25분, 6시 5분, 6시 55분, 7시 50분(막차)에 출발하니, 이를 감안해 10여 분쯤 앞서 '의령 칠곡'에 도착하면 되겠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군북IC에서 빠져나와 '의령'과 '칠곡' 방면으로 우측 방향으로 꺾어 가면 된다. 경남 의령군 칠곡면 내조리에 있는 공영무료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면 수월하다.
■먹을거리·볼거리
의령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세 가지 있다. 소고기국밥과 망개떡 그리고, 일본의 소바(메밀)에서 달라진 의령소바. 의령군청 앞에 관련 식당이 모두 몰려 있다. 군북IC에서 군청이 멀지 않으니 지나가는 길에 일부러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먹고 가는 이들이 있을 만큼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의령읍내에 홍의장군 곽재우 위패를 모신 충익사가 있고, 충익사와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가서 만나는 의령구름다리도 특이한 구조 덕분에 찾는 이들이 많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생가에도 '재운(材運)'을 기대하는 발걸음이 꾸준하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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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굴산 공영주차장 누각에 서서 바라본 자굴산이 쏟아져 내릴 듯 가깝게 보인다. 자굴산의 산줄기는 황소의 머리와 몸체에 비유되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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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굴산 공영주차장에서 걸어나와 양천마을을 거쳐서 자광사까지는 포장도로를 걷는다. 이 길의 왼편에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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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광사 뒷편이 자굴산 산행의 들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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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굴산의 산아래는 솔숲이 우거져 있다. 능선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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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선을 오르다가 자굴산 정상을 조망했다. 정상부는 황소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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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분재에서 정상으로 나아가면 만나는 팔각정자를 만난다. 달분정이다. 마산 무학산이 어렴풋하고, 날씨가 좋으면 그 위로 금정산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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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분정을 지나면 둘레길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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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틀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이 붙은 '베틀바위'. 자굴산에는 순한글 뿐만 아니라 경남 사투리가 지명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 산길을 걸으면서 그 뜻을 새겨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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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쭉 군락을 만났다. 봄이 되면 만개한 철쭉을 즐기는 꽃산행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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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굴산은 어디서나 탁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산행 기점인 내조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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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무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꽤나 넓고 탁 트인데다 고도감까지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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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굴산의 북쪽 코앞에 한우산이 막아선다. 구불구불 생긴 임도로 차들이 분주히 다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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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주변 산군이 파노라마뷰로 보여야 하는데 이날은 미세먼지에 가려 먼산들이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아래로 산행 기점인 내조마을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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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본 갑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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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계단에서 본 갑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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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 나무계단에서 본 갑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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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계단에서 내려다 본 갑을마을의 창공은 인상적이다. 마치 분화구나 분지처럼 커다랗게 내려다 보이는데, 그냥 뛰어 내리고 싶을 정도의 고도감이 느껴지는 창공이다. 실제 이 하늘로 뛰어들기 위해 한우산 활공장에는 패러글라이딩 마니아들이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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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레길 나무계단에서 만난 기암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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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사면 둘레길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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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사면 둘레길은 빛이 들지 않아 발이 빠질 만큼 잔설이 많이 남아있고 바람도 강해 귀가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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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터샘 부터는 외길이다. 길이 험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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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을 세워둔 쉼터를 거치면 솔숲을 만난다. 철분 성분이 많아서인지 붉은색을 띄는 흙길이 신기하다 싶을 즈음 갑자기 도로와 만나면서 들머리로 빠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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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굴산은 산허리 밑으로는 솔숲이 무성한데, 중턱 이후로 올라가면 소나무를 볼 수가 없는 독특한 식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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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굴산 산행의 날머리를 알리는 표석. 산행 기점인 공영주차장까지는 걸어서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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