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한 더위가 도대체 끝나긴 하는 건가 싶더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처서가 지나고, 반가운 단비도 내리더니 폭염이 몰라보게 기세가 꺾였다. 귓전을 앵앵거리며 못살게 굴던 모기들도 입이 삐뚤어졌는지 자취를 감췄다. 땡볕더위를 피해 '하안거'에 들었던 산꾼들도 이제 슬슬 본격적인 산행 채비에 나서야 할 때다.
하지만 산속에서 가을 정취를 맛보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다. 수목들은 한껏 농염해진 신록을 잃지 않고 있다. 가을은 시골마을 어귀의 과수나무나 고샅에 핀 들꽃에 먼저 찾아든다. 이번 주 '산&산' 팀은 가을 문턱으로 떠나는 산행을 준비했다.
빨갛게 익은 사과, 가을 알리고
고샅엔 나팔꽃·맨드라미 방긋 피어
산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호젓함 더해
채 가시지 않은 더위에도 마음은 평온
경남 밀양의 대표적인 오지마을인 바드리마을에는 지난여름 뙤약볕에 탱글탱글 여문 대추와 사과가 시집 갈 날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뺨을 붉히기 시작했다. 바드리마을은 백마산(白馬山·776m) 자락. 해발 400~500m의 고원지대에 은거하고 있다.
백마산은 밀양에서 그리 높지도 않을 뿐더러 주변 조망도 이웃한 향로산에 빼앗겨 이래저래 산꾼들의 구미를 당기는 산은 못 된다. 오죽하면 국토지리정보원의 1대 2만 5천 지형도 상에도 '776봉'으로만 표기돼 있을까. 이 때문에 산꾼들은 향로산(979m)과 향로봉(727m) 산행 중간에 곁다리로 끼우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가을 산행을 앞두고 가을 맛을 미리 보는 워밍업으로는 이만한 산이 없다. 북적거리던 피서객이 떠난 단장천변은 호젓함을 더하고, 산정에서 평온한 바드리마을과 밀양호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평화가 깃든다.
구체적인 등로는 밀양시 단장면의 평리마을을 출발해 고배이~질등~바드리마을~여래사~주능선~산시이~백마산 정상~백마산성터~725봉~배꼽목~풍류동을 거쳐 다시 평리마을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방식이다. 총 산행거리 8.4㎞에 이동 시간 3시간, 휴식까지 포함하면 5시간쯤 잡으면 된다.
산행 기점은 평리마을복지회관이다. 이팝나무와 대추나무가 마을을 뒤덮고 있는 이곳은 민속공예, 자연생태, 농사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팜스테이 마을로 꽤나 이름나 있다.
 |
하산길에 지나는 풍류동 마을의 고샅에 맨드라미가 빨갛게 피었다. |
복지회관 앞에서 왼쪽 포장로로 올라간다. 고샅에 핀 파란 대추가 한껏 물이 올랐다. 코를 갖다 대니 달콤한 향이 난다. 50m쯤 올라가면 무더위 쉼터를 겸한 정자 3기가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어 오선암 방면으로 오른다.
조계종 소속의 아담한 암자인 오선암을 지나 대숲길로 들어선다. 참옻나무 몇 그루를 지나치자 괜히 옆구리가 가려워진다. 잡풀과 관목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좁다란 사면을 10여 분가량 헤치고 나가야 한다. 여름 동안 산꾼들 발길이 뜸했던지 길도 희미하고, 수시로 '거미줄 러셀'을 해가며 치고 올라야 한다.
곧 첫 번째 이정표와 마주한다. '고배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곳에는 그 어원을 짐작하기 어려운 순우리말 지명이 많다. 둔덕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질등' 방면 이정표를 따라 우측길로 간다. 10분 뒤 숲을 벗어나면 묘 2기가 보인다. 부지런한 후손들이 벌써 묘소를 말끔하게 벌초해 놨다. 곧 질등에 이르면 하늘이 잠깐 열린다.
다시 우거진 숲을 5분여 헤쳐나가면 산들바람을 타고 향긋한 대추향이 묻어난다. 농로를 따라 바드리마을의 과수원이 펼쳐진다. 돌배처럼 탱글탱글한 호두나무, 성게 같은 꽃을 피운 가시오가피, 보라색으로 단장한 나팔꽃도 가을맞이 대열에 합류했다. 추석 때 출시하기 위해 마지막 손질에 여념이 없는 사과는 벌써 먹음직스럽다. 토심이 깊고, 토질이 좋아서 이번 가뭄에도 별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한 주민이 잘 익은 사과 2개를 소매에 쓱 닦아 건넨다. 한입 베어 무니 황금빛 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흠뻑 적신다.
백마산을 정면에 두고 과수원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20분쯤 유유자적 걸어 바드리마을로 들어선다. 바드리마을은 '밭들 마을' 혹은 '바로 달이 밝은 마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한자로 음차 해 '소월리(所月里)'로도 불린다. 과거에는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며 살았고, 지금은 27가구 주민들이 사과나 배, 대추 등 과수작물을 재배한다. GPS 기기로 확인하니 해발 450m,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옛날에는 등짐을 지고 산길을 오르내렸으나, 지금은 얼음골의 사자평명물식당에서 마을 안까지 차량이 드나든다.
마을로 들어서면 이정표상 당산 방면으로 간다. 마을 초입에서 우측으로 꺾어 50m쯤 가다 여래사 빗돌이 보이면 왼쪽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올라간다. 여래사 이정표에서 다시 좌측길. 은은한 아카시아향을 풍기는 칡넝쿨을 끼고 우물터 같은 작은 당집을 지난다. 생활용수 저수탱크 앞 포장로가 우측으로 크게 굽어지는 곳에서 포장로를 버리고 산길로 들어선다. 백마산 남릉은 깎아지른 비탈이어서 곧바로 치고 올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우회해서 주능선을 타야 한다.
염소 방목을 위한 철제 펜스를 우측에 끼고 사면에 붙는다. 흙비탈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시계 방향으로 나선을 그리며 사면을 치고 오른다. 10여 분 뒤 주능선에 붙으면 길은 또렷해진다.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20분쯤 가면 능선이 갈리는 산시이다. 왼쪽은 향로봉과 백마산 사이 안부가 있는 가산마을로 내려서는 길이다. 직진해서 암릉지대로 들어선다. 암벽 아래가 가파른 산비탈이어서 제법 아찔하지만 로프를 단단히 쥐고 오르면 별 어려움은 없다.
10분 뒤 밀양호와 바드리마을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조망바위다. 수위가 눈에 띄게 낮아졌지만 산그림자를 머금은 밀양호는 여전히 짙푸른 심연을 뽐낸다. 한창 시끄러운 밀양 송전탑도 군데군데 터 닦기 공사를 해 놨다. 정면의 수연산, 그 뒤로 만어산, 왼쪽으로 뾰족이 솟은 금오산과 토곡산도 지척이다. 북쪽 조망은 향로산에 가려 시원찮다.
다시 홈통 같은 바위 틈새로 매달려 올라가야 하는 로프지대가 이어진다. 암릉지대를 벗어나면 졸참과 철쭉나무가 우거진 포근한 흙길이다. 백마산 정상은 평평한 둔덕이다. 마을에서 올려다본 백마산 정상은 은빛으로 빛나는 암반의 기세가 우뚝하지만, 막상 올라서보면 밋밋하다. 나무에 가려 조망도 보잘것없다.
하산은 가던 방향 그대로 이정표상 향로봉 방면으로 내려선다. 우측은 깎아지른 돌 비탈, 왼쪽은 완만한 흙사면이다. 4분 뒤 백마산성터가 보인다. 가야시대 병사들의 병참기지로 이용됐다는데, 지금은 무너져 내려 허리 높이의 석축 흔적만 남았다.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면 우측 빨치산 초소 방면으로 내려간다. 초소는 찾아볼 수 없다. 깨진 바위와 잔돌이 깔려 미끄러운 돌비탈을 스키 타듯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25분 뒤 임도로 내려서면 시계 방향을 따라 바드리마을 방향으로 간다. 바드리마을 1.92㎞ 이정표는 그대로 지나친다. 풍류동 1.13㎞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왼쪽 샛길을 따라 능선으로 내려선다. 15분 소요. 산의 배꼽 위치쯤 되는 배꼽목에 이르면 풍류동을 향해 우측 샛길로 내려간다. 다시 어지러운 잡목림을 20분쯤 지난다. 실계곡을 건너 밭을 우측에 끼고 내려서면 곧바로 포장 임도와 합류하는데, 여기가 풍류동이다. 대추, 배나무, 방울토마토 따위의 유실수 사이로 버려진 흙집과 깔끔한 전원주택, 야외수영장이 딸린 고급 펜션이 공존하고 있다. 감나무가 빨갛게 익어가는 동네 어귀를 나서면 종점인 평리마을 복지관이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 밀양 백마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
▲ 밀양 백마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산&산] <419> 밀양 백마산 산행지도 (1/28)

[산&산] <419> 밀양 백마산 가는길 먹을곳 (1/28)
■찾아가기
원점회귀 코스여서 자가용 이용이 편하다. 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타고 밀양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밀양교차로에서 울산·언양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24번 국도로 갈아타고 7분쯤 더 달리다 금곡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단장·표충사 이정표를 따라간다. 1077번 지방도를 타고 10분쯤 더 가다 아불삼거리에서 양산·밀양댐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5분쯤 더 들어가면 산행 기점인 평리마을이다. 1시간 50분쯤 걸린다. 길을 잘 알고, 운전에 자신 있다면 양산을 거쳐 가도 된다. 배내골과 밀양댐을 지나는 길은 경사와 굴곡이 심해 '마의 도로'로 불리지만,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경부고속도로 양산나들목에서 빠져나온 뒤 어곡산단과 에덴밸리리조트, 신불산공원묘지를 지나 배내골 입구에서 밀양댐 방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1051번 지방도를 타고 30분쯤 더 들어가면 평리마을에 이른다. 1시간 15분으로, 이동 시간이 30분여 단축된다.
대중교통편은 부산 서부버스터미널(1577-8301)에서 밀양 가는 버스를 탄다. 오전 7시부터 매시 정시에 출발한다. 1시간 걸리며, 요금은 4천500원.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밀양교통(055-354-5392~3)의 고례 행 농촌버스를 타고 평리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오전 6시 40분 첫차를 시작으로 낮 12시, 오후 4시 20분, 6시 50분에 출발하는데, 부산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낮 12시 버스 외에는 사실상 선택지가 없다. 40분 걸리며, 요금은 2천300원. 평리마을에서 나오는 버스는 낮 12시 50분, 오후 5시 10분, 7시 30분에 있다. 밀양에서 부산 가는 버스는 오후 8시 10분이 막차다.
■먹을거리
종점인 평리마을에는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홍골(055-352-1385)'은 따끈한 두부에 콩나물과 산채를 넣어 무친 무채, 묵은지를 곁들인 '대추두부'와 엄나무 동동주, 파전 등 토속 음식을 내놓는다. 버섯을 얹은 순두부찌개와 구수한 청국장으로 시골 밥상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할배순두부(055-351-2774)', 매생이칼국수와 오리불고기 등을 파는 '장가네(055-356-6543)' 등이 있다. 박태우 기자
2013-08-29 [07:45:18] | 수정시간: 2013-08-29 [09:26:06] | 28면

|
▲ 산행 기점은 경남 밀양시 단장면의 평리마을복지회관이다. 복지회관 앞에서 왼쪽 포장로로 올라간다.
| |
|
▲ 무더위 쉼터를 겸한 정자 3기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꺾어 오선암 방면으로 오른다.
| |
|
▲ 오선암을 지나면 잡풀과 관목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좁다란 사면을 10여 분 가량 헤치고 나가야 한다.
| |
|
▲ '고배이'라고 씌여 있는 첫번째 이정표에 이르면 '질등' 방면으로 따라 간다.
| |
|
▲ 여름 동안 산꾼들 발길이 뜸했던지 길도 희미하고, 수시로 '거미줄 러셀'을 해가며 치고 올라야 한다.
| |
|
▲ 농로를 따라 바드리마을의 과수원이 펼쳐진다. 돌배처럼 탱글탱글한 호두나무, 성게 같은 꽃을 피운 가시오가피, 보라색으로 단장한 나팔꽃도 가을 맞이 대열에 합류했다.
| |
|
▲ 추석 때 출시하기 위해 마지막 손질에 여념이 없는 사과는 벌써 먹음직스럽게 빠알갛게 익었다.
| |
|
▲ 바드리마을로 들어서면 이정표상 당산 방면으로 간다. 마을 초입에서 우측으로 꺾어 50m쯤 가다 여래사 빗돌이 보이면 왼쪽 시멘토 포장로를 따라 올라간다.
| |
|
▲ 생활용수 저수 탱크 앞 포장로가 우측으로 크게 굽어지는 곳에서 포장로를 버리고 산길로 들어선다. 백마산 남릉은 깎아지른 비탈이어서 곧바로 치고 올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우회해서 주능선을 타야 한다.
| |
|
▲ 염소 방목을 위한 철제 펜스를 우측에 끼고 사면에 붙는다. 흙비탈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시계방향으로 나선을 그리며 사면을 치고 오른다.
| |
|
▲ 늦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시골마을 어귀의 단감과 대추나무에는 시나브로 가을이 찾아들고 있다. 백마산 조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산중마을'인 바드리마을도 가을의 문턱에 고즈넉히 서 있다.
| |
|
▲ 암벽 아래가 가파른 산비탈이어서 제법 아찔하지만 로프를 단단히 쥐고 오르면 별 어려움은 없다.
| |
|
▲ 마을에서 올려다 본 백마산 정상은 은빛으로 빛나는 암반의 기세가 우뚝하지만, 막상 올라서보면 밋밋하다. 나무에 가려 조망도 보잘 것 없다.
| |
|
▲ 백마산 북쪽 조망은 이웃인 향로산에 빼앗겨 시원찮다.
| |
|
▲ 미끄러운 돌비탈을 내려가다 임도와 합류하면 시계 방향을 따라 바드리마을 방향으로 간다.
| |
|
▲ 바드리마을 1.92㎞ 이정표는 그대로 지나친 뒤 풍류동 1.13㎞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왼쪽 샛길을 따라 능선으로 내려선다.
| |
|
▲ 하산길에 지나는 풍류동 마을의 고샅에 맨드라미가 빨갛게 피었다.
| |
|
▲ 풍류동에는 대추, 배나무, 방울 토마토 따위의 유실수 사이로 버려진 흙집과 깔끔한 전원 주택, 야외수영장이 딸린 고급 펜션이 공존하고 있다.
| |
|
▲ 감나무가 향긋하게 익어가는 동네 어귀를 나서면 종점인 평리마을 복지관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