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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산행(기타) | 노르웨이 오슬로 아케르스후스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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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힐링부산 조회621 작성일18-06-0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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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르스후스 성채(Akershus fortress) :

노르웨이의 호콘 5세 마그누손 왕(1270~1319)은 1299년 수도인 오슬로 시를 지키고 스웨덴과 같은 적을 방어하기 위해 웅장한 아케르스후스 성채를 세웠다. 이 성채는 워낙 튼튼했기에 여러 차례의 포위 공격에도 잘 버텨냈다. 그러나 1624년, 엄청난 화재가 오슬로에 발생했을 때, 아케르스후스는 완전히 불타 버렸다. 곧 크리스티안 4세가 성채를 다시 지었으며 이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디자인했다. 다시 한번 성채는 잦은 공격에 대항하여 견뎌 주었다.

이 성채는 단 한 번도 외부의 적에게 점령당한 적 없었으나, 1940년 싸움도 없이 독일군에게 항복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성채는 노르웨이의 손에 반환되어 반역자와 전범자를 가두고 처형하는 장소로 쓰였다. 이곳에서 처형당한 이들 중에는 나치의 편에 서서 노르웨이를 다스렸던 일등 파시스트 동조자 비드쿤 크비슬링도 있다.

아케르스후스가 효과적인 성채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슬로 피오르드를 마주보고 있는 오슬로 독 위편으로 위치를 선택했던 호콘 왕의 선견지명 덕택이었다. 물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 군대는 해상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노르웨이 무역의 대부분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는 크나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강력한 성채는 많은 관광객을 이끌며, 성채 내부와 주변의 공원 지역을 걷다 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의 정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케르스후스가 당시 성채로만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왕이 머물기도 했고, 왕족과 정부 관료들이 몸을 숨기는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국회, 행정과 교육 센터, 그리고 문화 공연이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다채로운 역사를 지닌 이 성채는 오슬로의 풍부하고 복잡다단한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박물관이라는 현재의 위치에 이상적인 장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케르스후스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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