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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89. 서동 오시게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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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펀부산 조회390 작성일20-10-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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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게고개는 삼거리 고개다. 금정구 서동에서 올라오는 길, 금사회동동에서 올라오는 길, 부곡동에서 올라오는 길, 이 셋이 고갯마루에서 만난다. 고갯마루에서 부곡동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동현중학교가 있어 찾기는 쉽다. 중학교 담벼락 ‘오시게마을’ 표지판은 여기가 숲이 우거지고 까마귀 까악까악 울던 고개였음을 알린다.

 

오시게고개는 현재 서동고개로 불린다. 버스 노선도에 서동고개로 나온다. 도로명은 서동로다. 2010년 금정문화원에서 발간한 〈금정문화-동상지역 편〉에 나오는 오시게고개가 서동고개다. 이름이 가진 무게감은 서동고개보다 오시게고개가 훨씬 묵직하다. 동상지역은 어딜까. 서동과 금사동, 회동동을 합쳐 한동안 동상동이라고 했다.

 

 

 

동래 오일장, 상설시장으로 바뀌며

갈 곳 잃은 장꾼들 고갯마루 자리 잡아

70년대 금사공단 들어서며 부곡동으로

도심 확대되며 또 노포역 맞은편으로

“어디로 떠밀리든 금방금방 일어서

질긴 생명력 가진 오시게시장의 원조”

 

 

 

오현(烏峴). 먹물이 든 사람은 오시게고개를 오현이라 했다. 오시게 오가 까마귀 오였다. 고갯길에 까마귀가 유독 많았다. 그래서 까막고개라고도 했다. 까치와 달리 까마귀는 사람을 꺼린다. 오시게고개에 인적이 뜸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뜸했다. 100년 전 이 일대 가구 수를 보면 안다.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은 1904년 발간한 동래군 백서. 거기에 이 일대 가구 수가 상세하게 나온다.

 

서동 28, 금천동 11, 사천동 21, 회천동 19, 동대동 8. 백서에 나오는 지역별 가구 수다. 금천동과 사천동이 합쳐 금사동이 됐고 회천동과 동대동이 합쳐 회동동이 됐다. 2018년 10월부턴 금사동과 회동동을 합쳐 금사회동동으로 부른다. 불과 100여 년 전, 저 너른 땅에 다 합쳐도 100가구가 안 살았다. 그때만 해도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 정말이다.

 

고개는 왜 넘었을까. 동상지역 사람이 오시게고개를 넘은 건 대체로 동래나 동래시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동래에서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장을 보거나 장에 내다 팔려고 고개를 넘었다. 사는 처지가 팍팍했기에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웃돌았을 것이다. 주로 밭작물이나 산 약초, 민물고기 등을 내다 팔았다.

 

동래시장은 원래 동래장으로 불리던 오일장이었다. 뒷자리가 2일과 7일인 날에 장이 섰다. 그러다 1937년 10월 상설시장으로 바뀌었고 이후 2년 동안 오일장과 상설시장이 동거했다. 오일장이 자립할 기간을 줬던 셈이다. 그렇긴 해도 오일장 장꾼에게 마른하늘 청천벼락이었다. 기껏 자리를 잡았는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오시게마을 안내판. 박정화 사진가 제공
 ▲오시게마을 안내판. 박정화 사진가 제공

오시게고개를 넘던 장꾼은 타격이 더 컸다. 구포장도 있었고 범일동 부산장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시장은 동래장이었다. 동거 기간 2년은 하루하루 살얼음이었다. 허가를 받아 장사하는 상설시장 상인에게 무허가 장꾼은 눈엣가시였다. 2년이 지나자 지저분하단 이유로 장터에서 쫓겨났다. 먹고는 살아야겠고 장터는 잃었고 하루하루 답답했고 막막했다.

 

“우짤꼬, 우짤꼬.” 동상지역 장꾼은 고갯마루 삼거리에 등짐, 머릿짐 내려놓고 한숨 푹푹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 짐 저 짐 구경삼아 들추었다. 필요에 따라 이 짐 저 짐 바꾸기도 하면서 사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난전이 들어서고 시장이 들어섰다. 오시게고개가 있고 오시게마을이 있어서 오시게시장이라 불린 새 시장의 역사는 그렇게 쓰였다.


서동 골목. 박정화 사진가 제공 
서동 골목. 박정화 사진가 제공

 

오시게시장은 불굴의 상징이었다. 시장에서 점포 하나 얻지 못하는 따라지였으나 장딴지 알통만큼은 천하제일이던 장돌뱅이 억척으로 일군 시장이었으며 장터에선 내쫓겼으나 삶터에선 내쫓길 수 없던 갑돌이갑순이 질긴 생명력으로 일군 시장이었다. 앞은 보이지 않고 뒤로 물릴 수도 없는 답답하고 막막한 처지에서 고개를 넘을 때마다 한 돌 한 돌 올린 돌탑 같은 시장이 고갯마루 오시게시장이었다.

 

시련은 또 닥쳤다. 자리를 잡는가 싶던 차였다. 1970년대 들면서 인근 금사동에 공단이 들어섰다. 고갯길 따라 도로가 놓이게 되고 오시게시장에는 다시금 찬 바람이 불었다. 공단에 떠밀려 도로에 떠밀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짐을 쌌다. 고갯길 끝나는 지점은 부곡동. 멀지 않은 그곳에 너른 공터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금사공단은 부산 첫 산업단지였다. 첫 공단이 금사동에 들어선 건 여러 요인이 있었다. 도시 외곽이었고 고속도로가 가까웠다. 무엇보다 노동력이 풍부했다.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온 이농민도 있었지만, 시내 살다가 이리로 옮긴 정책이주민이 많았다. 부산시는 1960년대 말부터 도시 정비와 환경정화에 공을 들였다. 이에 따라 중구 영주동 등지 고지대 주민은 1968년 금사동 인근 서동과 반송동으로 이주했다.


서동미로시장 모습. 박정화 사진가 제공
서동미로시장 모습. 박정화 사진가 제공

정책 이주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동시장에서 오시게 고갯마루로 이어지는 도로변 뒷골목은 이층 재건주택 일색. 이 재건주택이 정책이주민 거주지였다. 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기다랗게 이어지는 이층주택을 보노라면 괜스레 콧날이 시큰해진다. 시큰해진 콧날을 데우려 찾아간 서동시장 역시 재건주택 골목에 들어선 시장. 골목이 얼마나 오밀조밀한지 들어가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장 명칭이 서동미로시장이다.

 

부곡동 오시게시장은 잘나갔다. 2일, 7일 장날이면 부곡동에서 온천장 입구까지 장터로 바뀌었고 뒷사람에 떠밀려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다. 좀 살 만하니 개발의 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도심이 확대되면서 너른 공터가 도시계획에 들어갔다. 1982년 구서동 태광실업 건너편으로 또다시 옮겼다. 거기도 개발되고 무허가를 성토하는 민원이 생기면서 1994년 지금 있는 자리, 도시철도 1호선 종점 노포역 맞은편으로 옮겼다.

 

오시게시장은 어디에서도 오시게시장이다. 어디로 떠밀리든 금방금방 일어선다. 지금 옮긴 자리에서도 장날이면 시골 엔간한 장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진다. ‘부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시장에 들어서면 나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다. 언제 어디서든 억척으로 일어서고 질긴 생명력으로 일어서는 시장, 거기가 부산의 오시게시장이다. 오시게고개는 그 원조다.

 

▶가는 길=시내버스 29, 148, 155, 179, 183, 189번이 서동고개를 넘는다. 

도시철도 4호선 서동역에서 내려 서동시장, 동현중 방향으로 길을 잡아도 된다. 

 삼거리로 갈라지는 고갯마루엔 청년창업문화촌이 있어 오시게시장의 ‘포스’가 감지된다. 고개 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삼십 분 남짓. 서동시장 들렀다가 고개를 넘어도 여유가 충분하다.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

※이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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