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시리즈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55> 지리산 바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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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펀부산 조회569 작성일20-03-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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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 정상 아래 철쭉과 팔량치 부근 군락지의 철쭉이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연분홍빛 철쭉은 꽃잎이 겹쳐지면서 묘한 보라빛을 띠며 등산객을 유혹한다.

 

사천 와룡산에서 철쭉을 보고 생각난 것이 바래봉이었다. 바래봉 철쭉제는 세석평전 철쭉제와 함께 지리산 해발 높은 곳에서 펼쳐지는 성대한 꽃 잔치다. 올해는 4월 25일부터 시작하여 5월 19일까지 열렸다. 바래봉(1165m) 철쭉 군락지는 하반부와 정상부 두 군데로 나뉜다. 하반부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해당하는 산 아래쪽이어서 일찍 피는데 축제 초반에는 아래쪽 철쭉 군락지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축제 후반에는 바래봉 부근에서 팔량치까지 이어지는 능선에 군락을 이룬 철쭉이 등산인을 불러 모은다. 팔량치와 바래봉 정상 부근 군락지 철쭉의 개화가 절정이 되는 때는 5월 12일에서 15일 사이다. 바래봉이란 스님들이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바리때를 뒤집어 놓은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아래·정상 두 곳에 펼쳐진 철쭉 군락

세동치 고개~부운치 가는 길 ‘칼날 능선’

팔량치~바래봉 길목서 펼쳐지는 꽃 잔치

정상 전망대서 느끼는 지리산 능선의 힘

 

바래봉 철쭉 군락지가 형성된 것은 1968년에 호주에서 면양 2500마리를 들여와서 바래봉 부근에 풀어 놓았는데, 이들 양 가운데 다른 식물을 뜯어 먹은 양은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철쭉을 뜯어 먹은 양은 기절하거나 해서 한 번 먹어보고는 다시는 뜯어먹지 않아서 철쭉만 남아 군락지를 이뤘다고들 한다.

 

용산마을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마침 등산객들을 기다리는 택시를 탔다. 전북청소년수련원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니 바래봉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아 늘 다니는 코스라며 기사는 출발한다. 수련원 맨 위쪽 생태체험관 건물 앞에 내려준다. 지리산 서북 능선에 있는 세둥치 고개로 오르는 이정표가 기다리고 섰다.

 

오전 11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산길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녹색의 터널로 접어들었을 때 온몸이 느끼는 시원함과 편안함이 주는 상쾌함이 몸을 가볍게 띄워 올리는 기분이 든다. 20여 분 부드러운 오솔길 오르니 임도와 만났다. 임도에서 잠시 등짐을 추스르고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등로를 걸어 오른다. 산길은 갓난애 살결처럼 부드럽고 편안하다.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오르막길은 속살처럼 포근한 느낌을 준다. 임도에서 1시간가량 걸으면 세동치 고갯 마루에 당도한다. 수련원에서 1시간 20분 거리다. 능선에 오르자 벌써 군데군데 요염한 웃음을 보내주는 철쭉이 여기저기 숨어서 행장을 엿보고 있다.

휴일이 아닌데도 능선 위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철쭉 외에도 능선 가는 곳마다 내내 따라와 주는 자색 병꽃 또한 볼거리다. 부운치까지는 칼날 능선이라서 점심 먹을 적당한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부운치에 도착하니 주변에 널따란 장소들이 곳곳에 있다. 사용하지 않고 있는 헬기장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는데 버드나무 꽃가루가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지리산 서북능선(성삼재~덕두봉)에서는 지리산 주능선(노고단~천왕봉)이 한눈에 훤히 펼쳐 보인다.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로 막는다. 희미하게 펼쳐진 능선들을 짚어가며 예전에 다녔던 봉우리들의 이름을 되뇌여 본다. 중봉, 천왕봉, 제석봉, 촛대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 노고단 그리고 이어서 만복대, 세걸산 그리고 세둥치로 이어지는 능선이 꿈틀거리며 가슴에 들어온다. 점심을 먹고 나니 몸이 무겁다. 자벌레가 가듯이 한 땀 한 땀 기워가듯 느린 걸음을 내딛는다.

팔량치 부근은 철쭉 군락지로 피보다 더 붉은 꽃들이 바다를 이루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끝없이 들린다.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는 일은 힘이 든다. 어차피 사람과 어우러진 산과 꽃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팔량치에서 바래봉으로 가는 능선은 붉게 타고 있다. 누가 품고 있던 불씨를 놓아 입김을 불어 피워 올린 불인지. 나무 곁에 붙어 서서 사진을 찍는 여인들 얼굴이 붉은 물이 든다. 꽃에 취한 모습이 또한 아름다운 꽃이다. 사람들은 왜 꽃을 찾아 환호하는 것일까? 꽃은 나무의 절정이며 나무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오르가즘이다.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들도 그런 희열을 맛볼 수가 있기에 또는 대체 만족을 얻을 수 있기에 꽃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한 송이 꽃이 되어 꽃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기분이 좋다. 왠지 모르게 꽃처럼 마음도 몸도 환하게 피는 것만 같다. 누가 나를 보아주지 않을까. 맘껏 포즈를 취해 본다. 쯧쯔 교태다.

도시에 찌든 껍데기를 태우려고
불 타는 바래봉으로 간다
지나쳐 보지 못한 오르막에서
길을 재는 자벌레 걸음으로
한 땀 한 땀 쉼 없이 가다보면
타는 잉걸불 속에 들게 된다
불순물이 타서 땀방울로 떨어진다
눈에 든 어둠들이 달아난다
몸이 가벼워진다

사천 와룡산에서 보았던 철쭉 군락지보다 몇 배는 넓다. 능선길 내내 꽃과 눈 맞추며 걸었다. 사람들 속에 섞여 구상나무 조림지를 지나니 바래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가면 용산주차장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바래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지친 몸을 휴식하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나섰다. 바래봉 정상을 향해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샘터가 있었다. 로타리클럽에서 만들어 놓은 약수터다.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축이니 시원함이 발끝까지 전해져 내려간다. 물을 마시고 나니 힘이 솟는다. 오르막을 오르다 다시 나무로 만든 덱 계단을 만났다. 정상까지 이어진다. 이 덱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미끄러운 길이었다. 주변에 군데군데 철쭉이 자리 잡고 있어 눈요깃감이 되어 준다. 어떤 곳은 어린 철쭉 묘목을 심어 군락지를 복원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억새군락지이기도 했던 바래봉 오르막은 나무숲이 없어 사방으로 전망이 탁 트였다.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전망도 가히 천하일품이다. 360도를 회전하며 산이 뻗어가는 당찬 지리산 능선의 힘을 감상할 수가 있다.

정상에도 정상석만 남겨놓고 빙 둘러 나무 덱으로 감싸 두었다. 정상석을 앞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에는 쓸데없는 덱을 너무 많이 만들어 놨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들이 오히려 경관을 해치고 생태계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지, 우려가 든다. 과잉보호는 자생력을 잃게 하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다. 정상에서 머무는 시간은 단 5분이면 족하다. 뒤에 오는 이들에게 스스로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절정에서 다시 왔던 길을 내려간다. 삼거리에 도착하여 용산마을 주차장까지 이어진 넓은 임도를 따라 걷는다. 임도는 돌로 포장되어 있기도 하고 시멘트 블록으로 포장되어 있기도 하여 산길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곳곳에 쉼터와 전망대를 마련해 놓아 풍광을 감상하게 한다. 내리막은 거저먹기나 다름없다. 걸음이 절로 내려가진다. 아직도 병꽃은 철쭉꽃 잔해와 함께 산길을 따라 내려와 주었다.

국립공원 경계지점을 벗어난 곳에서부터는 아래쪽 철쭉 군락지가 펼쳐진다. 용산마을 위쪽에 자연 발생하여 형성된 군락지에 꽃들은 이미 다 진 상태이다. 그 중에는 이제 막 피어난 꽃도 있다. 피는 꽃이 있기에 지는 꽃도 있게 마련이고 지는 꽃이 있기에 피는 꽃도 있는 것 아닌가. 잘 조성되어 있는 공원을 가로질러 난 도로를 따라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가 되었다. 6시간 산행에 보행기가 3만 보를 넘었다. 오월 바래봉 가는 길은 꽃길이다. 가파르지도 않고 부드러운 곡선과 숲향을 흠뻑 느끼며 걸을 수 있어 힐링이 이뤄지는 명품 길이다.

강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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