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시리즈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45>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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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펀부산 조회738 작성일18-12-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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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봉에서 용장골로 내려가다보면 전망 좋은 바위 위에 세운 용장사지 3층석탑을 만난다. 불국토를 염원하던 신라인들의 정신이 응결된듯 단아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품은 곳이 경주라면 신라인들의 신앙과 예술혼이 집약된 곳은 경주 남산이라 하겠다. 산 전체가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골골마다 신라불교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마치 야외 조각박물관을 관람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또한 경주 남산은 신라의 흥망성쇠를 고리처럼 연결한 산이다. 박혁거세의 창업신화를 간직한 나정(蘿井)과 통일신라의 멸망을 예고한 포석정(鮑石亭)이 그 자락 속에 있다.


삼릉~금오봉~용장골 7.8㎞ 
바위와 암벽마다 새겨진 마애불 
불상·석탑 '신라 예술혼' 지천 널려 
암산 곳곳에 뿌리 내린 소나무 
몽환적 풍경 펼쳐지는 용장사지

경주 분지 한가운데에 솟아있는 남산은 웅장한 규모와 높이를 자랑하는 산이 아니다. 금오봉(466m)과 고위봉(495m)을 잇는 능선과 아기자기한 골짜기가 오히려 소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서로 자유롭게 어울려 부드러운 곡선을 형성하면서 더욱 산의 입체감을 깊게 해주는 것 같다. 이번 산행경로는 경주시 배동에 있는 삼릉을 출발하여 석조여래좌상 ~선각육존불 ~상선암 ~바둑바위 ~금오봉 ~용장골 삼층석탑 ~용장사지 ~선잠교 ~용장골 ~용장1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소까지 가장 보편적인 코스를 따른다. 이른바 남산 34골짜기 중 삼릉골과 용장골을 더듬는 경로이다.

삼릉계곡은 입구에 세 왕(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있어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사시사철 시원한 계곡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 일명 냉골이라 부른다. 그리고 남산의 골짜기 중 그 길이가 두 번째로 길고 또 가장 많은 불상과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라고 동행인은 전한다. 삼릉 주변 울창한 소나무 숲을 가로지른다. 비틀거리듯 서로 기대 서있는 소나무 사이로 깔아놓은 데크 길이 가지런하다. 마치 난마처럼 얽힌 역사 속 과거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제 소나무 군락지를 벗어나 완만한 경사로를 따르면 목이 잘린 채 결가부좌하고 있는 부처님을 길에서 만난다. 몸으로만 앉아 있음에도 균형을 잃지 않은 모습은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 그 자체이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사의 주름이 자연스럽고 옷깃을 여민 매듭과 장식이 정교하면서도 수려하다. 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만지면 그 부드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다.

떨어져나간 목 위의 머리 부분을 상상하면서 걷는 동안 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육중한 바위 앞에 도착한다. 거친 바위 면에 선각으로 육존불을 새겨 놓았다. 아미타불에게 꽃을 바치는 두 보살과 가운데의 석가여래를 호위하듯 양편에 선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그려져 있다. 석질이 단단한 화강암 위에 새긴 때문인지 천년의 풍우에도 그 윤곽은 선명하다. 이뿐이 아니다. 바위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 구석구석에는 그곳이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발길을 붙든다. 조금 큰 바위나 절벽 면에는 어김없이 마애불을 새겼거나 부처의 모습을 부조로 드러냈다. 마치 야외조각전시장 속을 산행하는 기분이다. 

석탑 터를 지나 바위 위에 올라서자 넘어야할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봉우리가 온통 허연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 같다. 암산에는 역시 소나무가 잘 어울린다. 바위 사이 좁은 틈으로 뿌리 내린 소나무들이 오랜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처럼 찬바람 속에 있다. 약 15분간 비탈진 산길을 오른다. 이어 봉우리를 지나 10분이면 바위 아래 둥지를 튼 상선암에 도착한다. 이제 급한 경사로는 거의 다 오른 셈이다. 

대웅전과 요사채 사이로 난 산길을 따른다. 100m 쯤 오르자 삼릉곡 제 9사지 선각마애불 표지판이 서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형상은 균열과 마모가 심해 전체 모습을 가늠할 수 없는 암각화 같다. 이곳을 돌아 능선에 올라서자 꽤 규모가 큰 바위를 지나게 된다. 일명 바둑바위이다. 이곳에서 건너다보는 주변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멀리 건천 쪽으로 단석산이 아스라하고 눈을 돌리면 고분군이 밀집한 경주 시내와 서천(형산강)일대에 조성된 평야가 막힘없이 펼쳐진다. 고도 서라벌이 번성할 수 있었던 지리적 조건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골짜기의 암벽에는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마애불이 온전한 형상으로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둑바위에서 약 20분간 능선을 오르면 금오봉(金鰲峯,466m)에 도착한다. 정상부근은 소나무와 참나무, 물푸레나무가 어우러져 전망이 좋지 못하다. '금오(金鰲)'는 큰 산을 떠받치고 있는 바다 속 자라라는 뜻으로 신선세상을 의미한다. <삼국유사>에는 이곳을 남산으로 쓰고 있지만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에는 금오산으로 표기했다. 아마 조선조 척불정책의 영향이 산명까지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유불선(儒彿仙)을 두루 아우른 김시습이 근처에 있는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할 당시 산명은 금오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오른쪽은 약수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고위봉과 용장골로 향하는 길이다. 용장마을 3.5km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른다. 
신라 천 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삼릉 소나무숲.
약 10분간 잡목 사이로 난 길을 내려가다 보면 또 갈림길을 만난다. 통일전으로 향하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용장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숲길에 들어서 10분을 더 내려가자 전망 좋은 바위 위에 세운 석탑이 나타난다. 용장사곡3층석탑이다. 불국사 석가탑과 같이 꾸밈이라곤 전혀 없는 수수한 자태이다.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돌을 다듬어 세운 탑으로 자연과 석공의 기예가 절묘하게 어울려있다. 미륵세상을 염원하던 신라인들의 소망이 탑의 형상으로 응결된 것 같다. 전망바위를 내려서자 이번엔 석조여래좌상이 양각된 바위를 지나게 된다. 이곳이 옛 용장사지였음을 알려주는 흔적들이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대현스님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한다. 또 절의와 광기의 지식인인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1465~1471) 은적암에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비롯하여 <유금오록(遊金鰲錄)>을 집필했다고 전한다. 경내였음직한 너른 터에서 올려다 보이는 고위봉의 능선과 골짜기는 가히 세상을 잊게 할 만큼 수려하면서도 몽환적이다.

다시 길을 잡으면 이내 계곡 사이에 걸쳐진 현수교 모양의 설잠교를 건너게 된다. 설잠(雪岑)은 눈 덮인 봉우리란 뜻으로 김시습의 법명(法名)이라고 동행인은 말한다. 계유정난(1453년)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21세의 김시습은 읽던 책을 불살라버리고 불가에 귀의해 전국을 유랑했다고 한다. 이제 화강암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이어진다. 일 년 내내 수량이 풍부하다는 용장골이다. 계류는 곳곳에 소를 이루며 아래로 흐르고 산길은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약 30분을 내려와 흔들다리를 건너면 공원지킴터에 도착한다. 산행 마무리 지점이다. 이어 한적한 마을을 지나면 곧 내남치안센터 버스정류소에 닿게 된다. 

남산 산행은 신라 천 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 시간 여행이었다. 불국토를 염원하던 신라인들의 이상과 그 꿈을 돌에 새긴 예술혼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약 7.8km의 거리를 세 시간 반에 걸쳐 걸었다.

문성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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