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시리즈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43> 밀양 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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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펀부산 조회259 작성일18-11-15 11:02
주소 :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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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봉 들머리 상운계곡과 운문사 서릉 치마바위 아래는 아직 단풍이 한창이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어울린 늦가을 정취는 등산객의 발길을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게 한다.

 

영남알프스 어느 산에 들어도 가을은 이미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있다. 그러나 능선을 덮은 낙엽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는 것으로 보아 이 가을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봄날을 수놓았던 신록과 한여름을 장식했던 녹음이 이제 그 기운을 다한 모양이다. 자연을 통해 깨닫는 흥망성쇠의 이치가 길 위에 놓여 있는 계절이다.


산에 오르는 행위를 일반적으로 '등산'이라고 한다면 옛 선인들은 이를 '유산(遊山)'이라고 표현했다. '산을 노닐다'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음주·가무를 즐기러 산에 올랐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유금강산기>, <유설악산기>, <유지리산기> 같은 '유산록(遊山錄)'을 보면 명산이 가진 아름다운 정취와 분위기 그리고 이를 통해 되돌아보는 인간사의 궤적을 통찰하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꿈틀거리듯 내리뻗은 골산의 근육과 그러면서도 곳곳에 비경을 감춘 밀양 산내면 억산을 찾았다.

범봉~사자봉~석골사 원점 회귀 
억산과 함께한 다섯 봉우리 11㎞ 
팔풍재 오르면 영남알프스 한눈에 
단풍과 앙상한 가지, 두 계절 교차

■단풍 아름다운 상운계곡


억산은 운문산 서쪽 능선에 있다. 낙동정맥의 주산인 가지산이 허리를 틀어 운문산을 낳았다면 운문산은 서쪽으로 지맥을 뻗어 범봉과 억산(億山)을 가까이 생산한 셈이다. 

그리고 억산은 두 줄기로 갈라져 남으로 북암산에 이르고 서로는 구만산과 육화산으로 이어지면서 밀양시와 청도군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있다. 이번 산행은 억산 주변의 다섯 봉우리를 주유하기 위해 산내면 원서리에 있는 석골사를 기점으로 출발해 대비골 우측 능선~전망바위~783봉~범봉(962m)~작은 범봉(삼지봉)~팔풍재(770m)~깨진 바위~억산 정상(944m)~갈림길~사자봉(924m)~수리봉(765m)~갈림길~석골사로 원점 회귀하는 경로를 따라 진행한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됐다는 석골사를 지나 딱밭재 방향으로 산길을 잡는다. 단풍이 아름답게 수놓은 상운계곡을 끼고 5분쯤 오르면 곧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산길은 새암터골 우측 능선을 따라 억산을 향해 곧바로 치고 오르는 지름길이다. 범봉으로 가기 위해 운문산과 상운암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직진한다.

약 10분쯤 길을 따르다 계류를 건너 잠시면 또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계곡 길을 버리고 왼편 산등성이로 올라간다. 로프를 늘어뜨린 바윗길을 타고 넘어 언덕 위에 올라서면 우측 계곡 너머 운문산 서릉과 위험스럽게 기울어진 치마바위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멀리 수리봉이 올려다보인다. 이어 바윗덩어리를 쌓아 올린 듯한 암벽을 우회해 내려선 안부에는 각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은 대비골로 들어가 팔풍재로 향하는 계곡길이다. 범봉 1.8㎞를 가리키는 방향을 따른다, 이제 헷갈림 없이 제대로 산길에 붙은 셈이다.

■독서와 같은 산행의 묘미

길은 처음부터 된비알이다. 산을 오를 때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초입 부분 입산 의식은 되도록 호되게 치러야 한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과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으로 땀을 찔끔 빼고 나면 차츰 몸은 가벼워지면서 거친 산길에도 무리 없이 적응하게 된다. 

범봉을 향하는 길은 바위 절벽이 이룬 급경사와 위험 구간이 많지만, 대신 시원하게 열린 전망 터를 내어주곤 한다. 뒤돌아 내려다보면 지금까지 올라왔던 길들이 위태롭게 이어져 있다. 다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길을 오르면서 평생 산을 좋아했고 산에 대한 글을 많이 남긴 퇴계 이황의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란 시를 읊조려 본다. '산에 오르는 것은 독서와 같다. 공력을 다했을 때 원래 스스로 내려오게 되고, 깊고 얕음을 아는 것도 모두 그로써 비롯된다'는 구절이다. 동행인은 그야말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고 감탄하면서 그럼 정상에서 내려오기 위해 다시 길을 오르자며 앞장을 선다.

차츰 고도를 높여 고사목이 바람을 맞고 있는 바위 전망대에 이르자 길 뒤편으로 운문산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앞쪽으로는 이제까지 능선에 가려있던 억산의 깨진 바위가 건너다보이고, 고개를 왼편으로 조금만 돌리면 문바위와 사자봉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북암산 봉우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지간히 올라온 모양이다. 

석골사를 출발한 지 근 1시간 반이 지났다. 한쪽 면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져 나간 암봉을 우회해 783봉에 오르자 능선 길은 조금 완만해지면서 가까이에 범봉이 올려다보인다.

범봉(962m)의 옛 이름은 호거산(虎居山)이라고 한다. 호랑이가 사는 산이란 뜻일 것이다. 운문산과 어울려 만든 골이 깊고 주변 산들이 높은 까닭이다. 그러나 정작 조망은 그리 좋지 못하다. 정상 주변엔 잡목이 우거져 시야를 가리고 있다. 여기서 억산으로 갈려면 팔풍재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10분쯤 내려가면 바위 봉우리에 닿는다. 삼지봉(904m)이다. 산내 사람들은 작은 범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제 시야는 청도 방향으로 열린다.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복호산과 그 품에 안겨 있는 북대암, 그리고 운문사 일부가 내려다보인다. 이제 갈지자로 얽힌 비탈면을 약 15분 동안 수고하다 보면 팔풍재에 내려서게 된다.
▲ 병풍처럼 둘러친 천황산 사자봉 능선.
■액자에 못 담을 천상의 경치

팔풍재(770m)는 밀양 산내 원서리 대비골과 청도 금천면 박곡리 대비골을 잇는 고개다. 대비골은 박곡리에 있는 대비사라는 절에서 유래됐다고 동행인이 전한다. 

그리고 묘한 전설이 있는데 999년 묵은 이무기가 천 년을 채우기 위해 대비사 상좌로 변신해 지내다 마지막 1년을 남겨놓고 그만 주지에게 정체를 들켜버리자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분을 이기지 못해 꼬리로 억산을 내려친 게 깨진 바위가 되었으며 그 후 이무기는 사람들을 괴롭히다 얼음골에 있는 호박소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억산의 깨진 바위와 얼음골 호박소를 연결 짓는 선인들의 상상력이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웅장한 규모로 앞을 가로막고 선 깨진 바위를 우회해 오른다. 나무 계단을 통해 그 정수리에 올라서자 그야말로 사방의 전경은 일망무제로 열린다. 가지산과 운문산, 천황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연봉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눈앞의 이 황홀한 풍경은 도저히 액자로 담을 수 없는 천상의 그림 같다는 생각에 그만 정신이 아뜩할 지경이다.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지척에 있는 억산 정상으로 향한다. 

억산(944m)은 바윗덩어리와 깨진 부스러기로 정상을 이룬다. 어떻게 '억'이라는 산명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풍광 좋은 악산임에는 분명하다. 문바위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길을 내려선다. 곧 헬기장을 지나고 10분이면 석골사로 내려가는 지름길을 만난다. 이를 지나쳐 북암산 방향으로 40분을 진행하면 사자봉(924m)에 오르게 된다. 건너편 문바위에서 보면 사자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해서 얻은 이름이다. 얼음골과 천황산 산줄기가 전면의 풍경이다. 이어 험한 바윗길을 약 30분간 거칠게 내려와 마지막 다섯 번째 봉우리인 수리봉(765m)에 도착한다. 원이름은 갈모봉이다. 능선을 지키고선 수문장 같은 문바위가 건너편에 보인다. 여기서 석골사까지는 30분을 더 내려가야 한다. 급경사를 이룬 너덜겅은 산행 내내 풍광 좋은 경치에 대한 작은 수고일지도 모른다.

약 11㎞ 산길을 6시간 반 동안 걸었다. 들머리는 만추의 홍엽으로 불붙고 있었지만, 주 능선의 나무들은 벌써 잎을 털어 버렸다. 두 계절 경계를 오르내렸던 가파른 산길이었다.


문성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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