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시리즈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24>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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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펀부산 조회974 작성일18-01-04 09:39
주소 : 제주시 오등동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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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령스러운 골짜기 영실의 병풍바위. 돌기둥 사이로 흘러내린 눈이 선계의 폭포처럼 아름답다. 구름을 인 장엄한 모습에 황홀한 경탄이 절로 나온다. 여행박사 제공

     
그동안 게재해온 '산&길' 코너를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로 이어갑니다. 부산 소설가협회 산행팀을 이끄는 문성수 소설가가 지역의 명산과 아름다운 길들의 새로운 면모를 안내합니다. 이 모임은 100차례에 걸친 산행기를 모은 <풍경을 발설하다>라는 기념 문집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부산 문인이 참여한 그 문집의 오묘하고 깊은 맛이 새 기획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 고스란히 전해질 것입니다.
 
2018년 무술(戊戌)의 새해가 밝았다. 늘 거듭되던 연례행사지만, 그래도 연초 벽두에 다지는 자기만의 각오는 나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무한히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을 잘라내 한 매듭으로 정리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의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실휴게소~윗세오름~어리목  
8.4㎞, 5시간 거리에 펼쳐진 비경  
수묵화 같은 병풍바위 오백장군상  
전설과 만나는 오름들도 한눈에  
풍파 견딘 고사목엔 삶의 미학이
 

다소 엉뚱한 각오인 '느리면서 단순하게 살아가기'를 올해 화두로 정했다. 날로 진화하는 세상의 속도에 호응하기 위해 수없이 접촉하고 더 많이 연결하려고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일이 꼭 행복의 나라로 이끌지는 않았다.

피에르 상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렇게 밝혔다. '느림이란 게으름과 무능의 대명사가 아니라, 아주 천천히 아주 경건하면서도 주의 깊게 현재를 음미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태도'라고 말이다. 우선 그 느림과 단순함의 의미를 한 번 들여다보고 직접 몸으로 느끼고 싶어 순백의 설원 속에 떠 있는 한라산을 찾았다. 눈꽃과 현무암이 어울려 무채색으로 빛나는 한라산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그 의미를 보여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한라산 화구벽의 위용.
■신령스러운 골짜기 영실 탐방로 

한라산 등반로는 대략 5가지로 나뉜다. 정상(1950m)까지 오를 수 있는 성판악, 관음사 코스와 윗세오름(1700m)까지만 갈 수 있는 어리목, 영실, 돈네코 코스다. 이번 산행은 영실 휴게소(1280m)에서 시작해 병풍바위(1500m)를 거쳐 윗세오름에 올랐다가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한라산을 등반했다는 이원근 여행박사 국내 팀장은 이렇게 소개했다. 총 길이 8.4km로 약 5시간의 산행시간이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코스지만, 오르는 도중 눈과 마음을 빼앗는 비경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는 길이라고 말이다.

영실 휴게소 앞에서 아이젠과 스패츠 등 겨울 산행 채비를 한 후 숲길에 들어섰다. 근래에 계속된 영상의 날씨 탓인지 인적으로 다져진 좁은 길만 하얗게 반질거리고, 숲 터널을 이룬 소나무와 졸참나무는 가지에 내려앉은 눈들을 모두 털어버렸다. 완만한 숲길이 계속되는 동안 가끔 보이는 겨울 찔레나무 붉은 열매(營實)가 눈길을 끈다. 신령스러운 골짜기 영실(靈室)의 영실(營實)이니 한약재로 귀히 쓰인다 한다.
 
■오백장군상, 그들의 기기묘묘한 형상들 

이윽고 병풍바위로 향하는 된비알이 시작되면서 고도는 높아진다. 나무 계단의 눈들이 모두 얼어있어 미끄럽다. 그러다 차츰 시야가 넓게 열리면서 주위에 상고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털진달래와 마가목 같은 관목들이 아름다운 눈꽃으로 변했다. 한라산 고지대 나무들은 겨우내 눈 이불을 덮고 추위를 견딘다. 그러나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눈꽃은 더욱 투명한 반짝거림으로 탐방객을 반긴다.

오른쪽으로 건너다보이는 능선에 그윽한 골짜기를 만든 병풍바위와 영실 기암인 오백장군상이 수묵화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기둥 사이로 흘러내린 눈들이 마치 선계의 폭포처럼 아름답다. 홀연 피어오르는 구름은 갑작스러운 신선들의 출현 같아 더욱 몽환적이다. 그리고 남쪽 능선은 크고 작은 암석들이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늘어서 있다. 무릎 꿇고 하늘을 우러러 두 팔을 벌린 듯, 허리 굽혀 능선을 힘겹게 기어오르는 듯, 턱을 괴고 앉아 명상에 깊이 잠긴 듯, 올라온 길을 뒤돌아 내려다보는 듯…. 그들은 무슨 연유로 한라산을 오르다 말고 저처럼 검은 화석으로 굳어졌는지, 아마도 선계의 금기를 어긴 탓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하얀 눈과 검은 암석이 빚어낸 무채색의 조화가 별유천지 같은 풍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왜 이곳을 금강산의 만물상과 버금간다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만했다. 

40분여 계단을 천천히 올라 병풍바위를 돌아나갈 즈음, 주목 군락지를 만난다. 살아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들이 세찬 칼바람을 이기지 못해 낮게 엎드려 눈꽃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런데 옷과 살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뼈대로만 선 채 또다시 바람을 맞고 있는 고사목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찢진 깃발처럼 마른 나뭇가지가 한쪽으로만 가리키는 그 정지된 펄럭임의 끝을 바라보았으나,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오직 단순화한 묵언 침묵이 바람과 함께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풍화된 뼈로 남아 오히려 바람을 견디고, 흔들리지 않아 더욱 움직임을 말할 것 같은 이 단순의 미학! '느리면서 단순하게 살아가기'란 신년 초 화두에 대해 명쾌한 침묵으로 화답하는 한라산 고사목의 신령스러운 모습이었다. 영하의 찬바람 속에서도 오랫동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가목의 상고대. 여행박사 제공

■설문대 할망, 그 전설의 상상력 

주목 군락지를 돌아 진달래밭을 빠져나가자 한눈에 담을 수 없는 광활한 설원이 전개됐다. 한라산 주봉인 백록담의 화구벽이 구름 속에 우뚝하고, 그 아래 윗세오름과 누운오름 사이에 있는 휴게소가 손에 잡힐 듯 올려다보인다. '서 있는 작은 돌밭'이라는 선작지왓과 눈 모자를 쓰고 바람에 떨고 있는 시로미 사이를 천천히 걷는 동안, 이 웅장한 한라산의 위엄 앞에 왜 모든 것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지, 바삐 서둔다고 닿을 수 있고 건너뛴다고 넘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닌지를 바람이 설명해줬다.

노루샘 근처에서 잠깐 눈을 아래로 두면 해안 저지대로 이어지는 수많은 능선과 올망졸망한 오름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설문대 할망(할머니)이 바다에서 길어 올린 돌을 치마폭에 담아 한라산을 쌓아 올릴 때, 옮기면서 흘린 부스러기가 360여 개의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오름을 기생화산이 만든 작은 산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한라산을 상징하는 이 전설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범하고 정겹게 느껴지는지 풍경이 말해주고 있었다.  

느리지만, 여유롭게 단순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다짐하는 동안 윗세오름 휴게소에 닿았다. 이제 따뜻한 컵라면과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인 후, 만세동산과 사제비동산을 거쳐 어리목 계곡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설문대 할망의 품에 안겨 걸으면서, 곳곳의 비경과 깨달음을 내어준 그녀의 너그러움에 흠뻑 취한 올해의 첫 산행이었다. 

 
문성수  
 
소설가 
 

  

 

 

 

 

 


 [작가와 함께하는 산과 길] <624> 한라산 길잡이


동절기 오전은 1시간 간격, 오후는 1시간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어리목까지는 40분, 영실 매표소 앞 주차장까지는 50분 걸린다.
 
영실 탐방안내소에서 영실 휴게소까지 2.4㎞ 구간은 약 40분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만 운행하는 택시를 이용하면 쉽게 이동할 수 있다. 탑승 인원과 상관없이 편도 1만 원이다. 

 

등산로는 나무 덱이 놓여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날만 좋으면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다. 겨울 산행에 아이젠은 필수! 윗세오름 휴게소의 매점은 노조 파업으로 지난해 10월 28일부터 운영이 중단됐지만, 다시 컵라면과 커피는 판매하고 있다. 김밥이나 간식, 따뜻한 물은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윗세오름에서 백록담 남벽 분기점까지는 왕복 4km, 2시간, 어리목 광장까지는 4.7km로 1시간 30분 정도면 내려갈 수 있다. 윗세오름에서 동절기 하산 통제시간은 오후 3시다. 날씨 변화가 많은 만큼 입산 통제상황을 꼭 확인해야 한다.

 

한라산 국립공원 사이트에 접속하면 이를 알 수 있다. 참고 영실관리센터 064-747-9950, 어리목관리센터 064-713-9950. 이 과정이 번거롭다면 여행박사 한라산 눈꽃산행을 이용해 편리한 여행과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서울, 부산 출발. 문의 010-8638-8670 이원근 팀장. 소설가 문성수

▲ 서귀포에서 바라 본 한라산의 전경. 하얀 눈을 이고 긴 능선을 품은 모습이 장엄하다.


▲ 단순의 의미를 가르쳐 준 고사목의 모습.

펄럭이지 않는 깃발처럼 한쪽으로만 가지가 뻗었다.



▲ 눈이불을 덮은 주목군락지. 매찬 바람에 낮게 엎드려 겨울을 견딘다.


▲ 병풍바위에서 영실계곡으로 내려가는 탐방객들.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걸음은 한없이 느려진다. 



▲ 영실계곡의 남쪽 능선.

한라산을 오르는 오백장군의 기묘한 형상들이 금강산의 만물상과 흡사하다. 



▲ 털진달래의 상고대 모습. 화려한 눈꽃으로 탐방객을 반긴다.


▲ 산행 들머리에서 차츰 고도를 높이면서 처음 만난 눈꽃세상.


▲ 겨울 찔레나무의 붉은 열매. 부인병을 치료하는 귀한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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