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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 [산&산] <393> 산청 정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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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조회2,909 작성일13-08-0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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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산 전망대 인근에서 바라본 북쪽 조망. 저 멀리 봉우리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산이 감암산이다.
1990년대 초·중반 전국적인 답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전설이 유물을 만나면 현실적 실체감을 얻게 되고, 유물은 전설을 만나면 스토리텔링을 갖추게 된다"라며 이야기의 힘을 역설한다.

어떤 지역을 여행할 때 겉모습이 화려한 명소나,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곳만 찍고 돌아다닐 뿐 그 속에 녹아들어 있는 역사와 스토리까지 체화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스토리와 결합된 유물이나 자연 유산은 한 번 지나친 발길을 다시 이끄는 위력을 발휘한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스토리텔링 열풍이 불고 있지만, 사실 전국의 산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간직한 관광자원도 없지 싶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산들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나 나무, 폭포, 유서 깊은 고찰을 품고 있으면 어김없이 그럴듯한 전설 한두 가지쯤은 얽혀 있다.

경남 산청의 정수산(淨水山·841m)도 그런 산들 중 하나다. 물이 깨끗하다고 정수산이라 이름이 붙여진 이 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자수려의 고장, 산청 산세의 한가운데 있고 산수국, 노루오줌, 까치수염, 엉겅퀴 등 야생화도 지천으로 널렸다. 여기에 산자락에 신라시대 고찰인 율곡사가 있고, 정상 바로 턱밑에는 우람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그에 얽힌 이야기가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단일바위로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새신바위. 율곡사 단청에 얽힌 전설이 자태를 한층 신비롭게 한다.
전설부터 풀어보자면 내용은 이렇다. 율곡사 뒤편 산봉우리에 수십 길이나 되는 암벽이 있다. 원효대사가 절터를 잡을 때 이 바위에 올라서서 율곡사 터를 정했다는 곳이다. 율곡사의 대웅전을 중창할 때 한 목수가 찾아와 일을 자청했다. 단청 작업이 시작되자 목수는 법당 안에 틀어박히면서 앞으로 7일 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며칠째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상좌승이 이레째 되던 날 결국 몰래 문틈으로 법당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날아서 단청을 그리다가 그만 붓을 떨어뜨리고 날아가 바위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 바위를 새신바위(鳥神巖:조신암)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율곡사 법당의 천장 밑 좌우 벽면 산수화 그림 두 점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처럼 인간의 무분별한 호기심과 조바심을 경고하는 이 이야기는 유사 이래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원형설화를 만날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지옥에서 데려오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아내의 절박한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가 영원히 아내를 잃고 만 그리스 비극의 오르페우스 설화나 소돔 멸망 당시 뒤를 돌아보지 말고 피하라는 신의 경고를 무시했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만 성경 속의 롯의 아내 이야기가 그렇다. 인색한 부자가 스님에게 쇠똥을 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몰래 시주한 장자의 며느리가 스님이 제시한 금기를 어겨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인 '장자못 설화'는 전국 곳곳에서 전해져 내려온다.

율곡사와 비슷한 시기에 중창된 전북 부안의 내소사 전설은 판박이다. 단청 작업을 하던 새가 사미승과 눈을 마주치자 피를 토하며 산속으로 날아갔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구조와 소재가 대동소이하다. 무분별한 호기심을 경고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절의 단청 그림은 왜 완성되지 못했을까?'하는 호기심이 이런 전설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된 셈이다.

들머리는 율곡사 경내다. 대웅전 왼편 등산로 안내석 바로 옆쪽의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로 들어서면 등로가 열린다. 실 계곡으로 흐르는 상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우거진 소나무 사이를 헤치고 간다. 초반부터 만만치 않은 비알길을 타야 한다. 왼편으로 계곡을 끼고 10분쯤 능선을 타다 물줄기가 가늘어지는 곳에서 계곡을 건넌다. 길이 희미한데다 중간 중간 바윗덩이가 길을 막고 강풍에 부러진 잡목가지들이 길에 널브러져 있어 발길이 더디다. 계곡 물소리가 잦아들면 빼곡한 박달나무 숲을 지나 입춘이 지나도 녹지 않은 잔설이 깔린 사면을 지그재그로 치고 오른다. 30분쯤 걸으면 오른쪽으로 절벽에 매달려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바위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이 바위가 바로 새신바위다. 크고 작은 바위 수십 개가 어우르고 더불어서 세월에 한 덩어리로 녹아 있는 모습인데 전체가 단일 바위라고 한다. 금원산의 문바위에 이어 단일바위로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데 얼핏 봐도 높이가 30~40m는 됨직하다. 서부경남 산악인들의 암벽 등반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새신바위를 머리 위에 두고 앙칼진 바위 무더기를 타고 넘으면 새신바위 갈림길과 마주친다. 왼쪽이 정수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지만, 오른쪽으로 50m쯤 걸어 새신바위에 올라선다. 조망이 시원하다. 가슴을 펴고 그 옛날 원효대사가 그랬던 것처럼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아담한 율곡사 절간 마당이 눈에 잡힌다. 북동쪽으로 고개를 들자 수리봉을 시작으로 산청과 합천의 경계에 우뚝 솟은 부암산, 봉우리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감암산이 머리를 내민다. 황매산 뒤로 저 멀리 합천 허굴산, 악견산, 의룡산까지 시야에 잡힌다. 고개를 돌리면 둔철산과 웅석봉을 지나 정수지맥이 뻗어 나오는 지리산 천왕봉, 중봉도 한달음이다.

난간 바위 끝에 서니 바위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 같다. 세찬 강풍까지 불어 닥치니 웬만한 강심장이라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오래 서 있기는 힘들겠다.

다시 새신바위 갈림길로 되돌아온다. 정상 방면으로 5분쯤 걸어가다 '내 천(川)'자를 그리며 소나무 세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는 갈림길을 마주하면 오른쪽 샛길을 따라 내려간다. 낙타 등처럼 세 번 오르내리는 능선을 타고 간벌한 나무 더미를 헤치고 15분쯤 전진하면 철탑이 보인다. 참솔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3분쯤 내려간다. 척지고개 사거리에 닿으면 왼쪽은 둔천산으로 이어지는 척지마을 가는 길이다. 오른쪽은 도성사(2.3㎞)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1006번 지방도와 맞닿아 있는 도성사는 접근성이 좋아 이 코스로 오르는 산꾼도 많다. 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잣나무 숲 사이로 단조로우면서도 힘든 비알길이 계속 된다. 25분쯤 걸으면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 이르는데 진짜 정상은 이곳에서 2분쯤 더 걸어 쉼터 벤치가 설치돼 있는 곳이다. 앞쪽의 정상석은 2000년 부산의 한 산악회가, 뒤쪽 정상석은 4년 뒤 산청의 산악회가 세웠다.

정상이라고 하지만, 평평한 봉우리에 벤치까지 놓여 있어 동네 뒷동산에 온 듯 감흥은 별로다. 빼곡한 단풍나무에 막혀 조망도 시원찮다. 진짜 조망은 이곳에서 5분을 더 걸으면 마주치는 전망대 바위에서 충분히 맛볼 수 있다.

하산길은 차황면 방면 이정표를 따라간다. 전망대에서 30분쯤 내려가면 막다른 T자 갈림길과 맞닥뜨리는데 이곳만 주의하면 된다. 오른쪽 길은 잡목 덤불이 길을 막고, 송이버섯을 보호하기 위한 철조망까지 둘러쳐 있어 진행이 어렵다. 왼쪽길로 들어선 뒤 조금 부담스러운 급경사 내리막을 30분쯤 이어가다 억새밭과 경남목장을 지나 외길로 25분을 더 내려가면 종착점인 철수마을이다. 8.3㎞를 걸었고, 4시간 30분이 걸렸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답사대장 010-3740-9323.

글·사진=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산청 정수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산청 정수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산&산] <393> 산청 정수산 산행지도 (1/28)
▲ 산청 정수산 산행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산&산] <393> 산청 정수산 가는길 먹을곳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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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회귀가 안 돼서 승용차를 이용하려면 종착점인 철수마을에서 들머리인 율곡사까지 다시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군북 분기점에서 의령 방면 우측으로 빠져나온다. 국도를 이어 타고 25분쯤 달리다 시천·단성 방면 이정표가 나오면 우측 방향으로 진행한 뒤 10분 뒤 마주치는 문대삼거리에서 차황·율곡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신원·차황 방면으로 1006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우측으로 율현교가 보이는 율현마을 삼거리에 이르면 율곡사 이정표를 보고 7시 방향으로 꺾어 임도를 타고 들어간다. 2분쯤 가면 율곡사 주차장이다.

종착점인 철수마을에서 율곡사까지 가려면 고마정 정류장에서 내린 뒤 800m쯤 걸어야 한다. 하루 7차례 버스가 운행한다. 산청교통(055-973-5191).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면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차황택시(055-972-7959). 15분 소요. 1만 원.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려면 부산서부터미널(051-322-8301)에서 산청 가는 버스가 오전 5시 40분부터 20~30분 간격으로 있다. 2시간 20분 소요. 1만 1천200원. 산청시외버스터미널(055-972-1616)에서 율현마을 가는 버스(산청교통, 055-973-5191)를 타면 된다. 오전 9시 10분, 오후 1시. 25분 소요. 2천500원. 종착점인 철수마을에서는 오후 2시, 6시에 산청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있다. 산청에서 부산 가는 버스는 오후 8시까지 20~30분 간격으로 있다.


먹을거리

철수마을 인근에는 식당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식사를 하려면 차로 20분쯤 거리에 있는 문대삼거리로 나오는 게 좋다.

향어회, 붕어회, 메기탕, 추어탕 등을 파는 어탕집과 아구찜 식당, 고깃집들이 여럿 모여 있다. 간단히 요기를 하려면 해물두부전골과 시큼한 김치에 곁들인 촌두부 등을 내놓는 '청산촌두부'도 추천할 만하다. 박태우 기자


2013-02-21 [07:31:38] | 수정시간: 2013-02-21 [14:38:45] | 28면




▲ 들머리인 율곡사 경내. 새신바위와 얽힌 전설이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 대웅전 왼편 등산로 안내석 바로 옆 켠의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등로가 열린다.


▲ 초반부터 만만치 않은 비알길이 이어진다.길이 희미한데다 중간중간 바윗덩이와 강풍에 부러진 잡목 가지들이 길을 막는다.


▲ 새신바위 갈림길에서 정상 방면으로 5분쯤 걸어가다 소나무 세 그루가 비스듬히 서 있는 갈림길을 마주하면 오른쪽 샛길을 따라 내려간다.


▲ 정상석이 세워져 있지만 진짜 정상은 이곳에서 2분쯤 더 걸어 쉼터 벤치가 설치돼 있는 곳이다.


▲ 단풍나무 사이로 벤치가 설치돼 있는 이곳이 진짜 정상이다.


▲ 하산길은 차황면 방면 이정표를 왼쪽으로 내려간다.


▲ 전망대에서 30분쯤 내려가다 막다른 T자 갈림길과 맞닥뜨리면 주의해야 한다.오른쪽 길은 잡목 덤불이 길을 막고,송이버섯을 보호하기 위한 철조망까지 둘러쳐 있어 왼쪽길로 진행한다.


▲ 급경사 내리막이 30분쯤 이어지지만, 억새밭이 보이면 길은 편안해진다.


▲ 철수마을에 내려가는 길에 경남목장을 지나야 한다.


▲ 1006번 지방도와 맞닿는 종착점인 철수마을 입구.왼쪽으로 20m쯤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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