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여행

대마도 | 대마도 이즈하라마치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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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조회7,148 작성일13-08-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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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섬은 멈춘 듯 하다. 대마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심인 이즈하라마치 시내. 시골 읍내에 온 듯 한가로우면서도 따분하다. (1)거리의 고양이도 좀처럼 뛰질 않는다. 북적이는 사람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깃발 아래 모여있다.

그러나 시내의 좁은 골목길로 한발 내딛고 들어가면 섬의 숨소리는 어느새 거칠어진다. 작은 섬이라고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다. 이게 영 낯설지가 않다. 대마도 시청을 중심으로 마실 거리 내에 우리네 역사가 가득하다.


백제 승려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슈젠지(修善寺)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사찰로, 현지인들보다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더 잦다.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 을사늑약을 반대해 의병을 일으켰던 최익현 선생은 그 이름보다 당신의 말로 더 유명하다. 선생은 1906년 일제에 체포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대마도로 끌려온 뒤, 단발령을 거부하며 단식을 하다 순국했다.

슈젠지는 선생의 시신이 부산으로 이송되기 전 나흘간 머물렀던 곳. 실제 가 본 그곳은 아담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한국인들이 그의 뜻을 기려 세운 순국비만이 그 비통한 역사를 기억할 뿐이다.

슈젠지 대문을 들어서 오른쪽으로 (2)앞치마 같은 옷을 두른 지장보살 석상도 놓치지 말 것. 일본의 지장보살 신앙은 유별나다. 그래서일까? 섬 곳곳에서 작은 크기의 지장보살 석상을 손쉽게 볼 수 있는데 옷까지 입혀 놓았다.

슈젠지를 나와 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382번 도로변으로 하치만구(八幡宮)신사 입구를 나타내는 도리이(鳥居)를 볼 수 있다. 최익현 선생이 대마도로 끌려 와 처음 3개월간 수용생활을 했던 장소가 바로 이곳 하치만구신사의 광장. 지금은 수용시설과 관련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치만구신사는 삼한에 임나일본부를 건설했다는 가상의 인물 진구(神功)황후를 모시는 곳으로 일본 역사왜곡의 한 단면이 묻어나는 장소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접고 본다면 도심 속 작은 신사의 상쾌한 공기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여기서 잠깐! 일본의 신사 앞에 '테미즈야(手水舍)'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약수터 같은 시설이 있다. 이름 그대로 손을 씻는 곳. 마시는 물이 아니다. 마신다고 잡아가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혹 이상하게 보여지거나 마시기엔 수질이 다소 좋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하치만구신사를 나와 382번 도로를 따라 쓰시마교류센터 방향으로 2~3분만 걸어가면 교류센터 뒷편 작은 비탈길 위로 고려문이 서있다.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문. 원래 대마도 도주가 머물던 사지키바라성에 있었지만 1987년 태풍의 피해를 받아 무너지자 현재 위치로 옮겨 복원했다. 고려문에서 길 맞은편으로 보이는 비석이 조선통신사비. 이곳을 찍고 그 옆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 들르는 것도 잊지 말자.

혹시 자료관을 나올 무렵 정오가 가까와지고 있다면 잠시만 발걸음을 늦추자. 낮 12시가 되면 인근 시청에서 우리나라 동요인 '고향의 봄'이 흘러나온다. '원래 일본곡인가?' 아니다. 이원수 선생이 쓴 노랫말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인 '토종' 동요다. 이국(異國)에서 듣는 한국의 동요.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작은 서비스다.

시청 인근을 흐르는 하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반쇼인(萬松院)으로 향한다. 대마도를 지배해 온 도주들의 묘석이 모여있는 곳이다. 조선의 통신사들도 대마도에 도착하면 먼저 이곳에 참배했다고 한다. 본당에 들어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조선왕실에서 하사한 삼구족(三具足)이 눈에 띈다. 향로와 화병, 촉대로 제사에 쓰이는 물건이다.

본당을 지나 작은 문으로 나서면 도주들의 묘석에 오르는 계단길이 있다. (3)햐쿠간기(百雁木)라고 불리는 132개의 유명한 돌계단길. 계단을 둘러싸고 높이 솟은 삼백나무와 계단 양쪽으로 줄지어 선 석등들로 인해 마치 계단의 끝에 미지의 세계가 연결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올라가면 말 없는 묘석들만이 즐비할 뿐.

세이잔지(西山寺)는 9세기 이전에 세워진 사찰로 이즈하라 항구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맞은편 언덕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세이잔지는 조선통신사가 대마도에 들렀을 때 머물던 외교창구 겸 숙소였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것일까? 지금도 유스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

절 뒷편의 대숲에는 제주 4·3항쟁 때 죽은 억울한 영혼들이 묻혔다. 당시 제주도 바다에 버려진 시체들이 해류를 따라 섬으로 흘러왔는데 어민들이 세이잔지와 다이헤이지(太平寺)에 시신을 안치했다.

남부경찰서 인근 다이헤이지에는 당시 죽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비석 '무연지제영비(無緣之諸靈卑)'가 있다. 사찰 내 묘원의 산자락 부근에 있지만 처음 들러서 찾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세이잔지 인근에 위치한 고우세이지(光淸寺). 1872년 이 절의 본당에는 조선어를 가르치는 '한어학소(韓語學所)가 개소됐다. 하루 4시간씩 공부하고 매달 시험을 치르는 3년제 학교로 통역사 양성이 주 목적. 당시 이 학교는 섬 내 주민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여서 입소경쟁이 치열했다.

그 외에도 고종의 딸 덕혜옹주와 대마도주 아들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덕혜옹주결혼기념비, 풍랑으로 표류한 조선인 어부를 위한 표류민집단수용소가 있던 자리인 표민옥적(瓢民屋跡), 춘향전을 번역해 일본에 알렸던 지한파 소설가 나카라이(半井)기념관…. 뚜벅이가 되어 골목골목을 거니노라면 마치 우리나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스쳐지나면 그저 그런 옛 것들일 뿐인 이국의 작은 절들과 묘비. 조금만 살펴 알고 보면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흔적들이다. 대마도가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굳이 역사공부가 귀찮다면 대마도 전문여행사인 발해투어의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다보면 마치 '新한국통신사'가 된 기분이다. 1박2일, 2박3일 상품의 일정 중 하루는 이즈하라 시내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가격은 1인당 20~30만원대. 글·사진=김종열 기자 bell10@busanilbo.com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총 2건 / 최대 200자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는 곳으로 기억이 납니다 ^^*
쉽게 가볼수 있는곳이지만 먼나라 일본 대마도~작년 추석때 혼자
아리아케산(유명산) 추억이 ~~

커피향기님의 댓글

커피향기

대마도에서도 함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덕혜옹주의 기억을 소개하는 노래가 있어함께 나눕니다. "허진설의 눈물꽃"이란 노래인데, 덕혜옹주를 주제로 가사와 멜로디가 애절하네요.

<가사>

- 눈물꽃 -

바람에 스치듯 내 아련한
지난 기억 속에
햇살 속에서 내 손등 위에
꽃잎을 놓아주던 내 님이여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내 가슴에 꽃이 눈물이 되어 흐르네.

사랑아~~ 나를 지나가네.
이제와 내가 세상 속에
돌아온 이유를 알고 싶은지

내 뺨에 흐르는 내 기억들 모두
꽃 되어 내 가슴에 피네
눈물로 내 맘에 흐르네.

색동옷님의 댓글

색동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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