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상식

가슴저미고 눈물만 흐르는 智異山 이야기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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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몽블랑트레킹 조회2,295 작성일14-12-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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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굴.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뒷산에 위치한 선녀굴
정순덕 여인이 20대 청춘을 숨어살며 보낸 곳.
당시 수색작전에 참여한 분들과 목격자들 증언.

마천, 추성, 송대, 남호, 동강, 문정 주민들 구전.

지리산은 남부지방에서 가장 일찍 첫눈이 내린다.
단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천왕봉 주위에는 하얀 눈
겨울이 일찌기 찾아오고 봄은 제일 늦게 찾아오는 곳.

'1962년 2월 겨울이 한창이었던 마천 추성골.'

칠선계곡 쪽에서는 천왕봉 아래 희끗희끗 쌓인 눈.
추성리에서 바라보면 겨울이 지나가기엔 아직도 요원
사찰(유격대) 경찰들은 칼빈 소총의 잠금 장치를 한 채
흙으로 채운 마대로 쌓은 토치카 안에서 지루한 하루 하루.

1955년 2월에 이르러 빨치산 세력은 약화되었으나
7월 이후 분산된 빨치산들은 다시 지리산으로 집결
조직을 복구하고, 점차로 활동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경찰의 소탕작전은 1955년 후반부터 1956년까지 실시
이 작전으로 55년 조국출판사, 전북도당, 전북의 남원,
정읍군당, 전남 남부 지도부 등의 빨치산 부대들이 소멸.

이현상이가 빗점골에서 사살되고 그 이후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이 거의 사라졌다
당국이 공식선포한 시기는 1955년 5월 23일.

그러나, 1956년 말까지, 43명의 빨치산들이 활동
1953년 7월 휴전 후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활동
당국에서는 경찰서장의 재량으로 사찰 경찰을 임명
향토 방위 또는 빨치산 소탕 작전 때엔 도우미 역할

문영만과 지동식은 이런 사찰 경찰로서
추성리 빨치산 신고 책임을 맡고 있었다.
마천 지서의 지시에 따라 무한정 경계 근무

가끔은 칼빈 소총으로 몰래 사냥을 나가기도 하고,
벌목꾼이나 숯꾼들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고 부수입.
향토 방위대 소집권한도 부여받아 제법 괜찮은 위치.

고사리나 산채를 채취하러 가는 주민들을
빨치산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감시
관솔(소나무 기름이 엉긴 나무) 채취 허가권.

몇년 동안 이렇다 할 전투하나 치루지 못하고
기약 없는 방위 임무만 부여받은 채 하루 하루
어느날 추성골에서 곰을 보았다는 나무꾼의 제보

몇 달 동안 뜸했던 곰 사냥 생각이 간절했다.
꼭 곰이 아니라도 송아지 만한 노루사냥 계획
추성골 석이버섯 전문 채취꾼 허정갑을 안내자

18세의 기골 장대한 허정갑에게는 대나무 죽창
세 사람은 벽송사 뒤쪽 산 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빨치산이 숨을 곳을 없애려 불을 질러 온통 민둥산

약초꾼들이나 나무꾼들이 오르내리던 길목이지만
빨치산들의 출몰 위험 때문에 다져 있지 않은 산길.
정순덕 일행이 언제 집중사격할지 모른다는 강박의식

그들은 선녀굴을 거쳐 독바위 넘어 쑥밭재로 갈 계획.
마천 지서에는 빨치산 수색작전이라고 변명을 할 요량
북서쪽 능선에는 쌓인 눈위에 짐승들의 발자국이 선명

아직도 지리산 어딘가에 숨어 지낸다는 정순덕

눈위의 발자국으로 추적하기에 아주 용이하다는 계산
신출귀몰한 정순덕 여인을 잡거나 사살하면 큰 보상금
평생 행복을 보장받을 만큼 거액이 눈앞에서 오락 가락.

산 능선을 두어 시간을 올랐을 때
개가 발버둥을 치며 낑낑대기 시작.
문영만은 사냥개 목줄을 풀어 주었다.

무엇인가 냄새맡은듯 선녀굴로 달려가는 사냥개
두 사람은 선녀굴을 향해 카빈 총구를 겨냥했다.
6.25 무렵에는 약 2만 빨치산들과 군경찰 토벌대

지리산에서 활개치며 양민들을 참 많이도 괴롭혔다.
젊은이들에게 보급투쟁 명목으로 약탈한 생필품 운반.
공산당 세뇌 교육을 시켜 빨치산 부대로 편입하곤 했다.

빨치산이 가장 많이 출몰하였던 마천 지역

경찰의 힘으론 그네들과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어서
마을 청년들로 향토 방위대를 조직해 빨치산과 대적
향토 방위대와 빨치산의 첫전투는 독바위 아래 노장대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향토 방위대
빨치산들은 여러번 마천 지서 습격사건,
면소재지 당벌마을을 습격한 빨치산 공세

함양 빨치산 주요거점은 노장대 신밭골 쑥밭재
산청 빨치산 부대와 정보교환을 할 때는 사립재
주요 지시사항이나 공격목표, 부대사항등 정보교환

특히, 독바위 인근 '천연의 요새' 선녀굴을 위시해서,
노장대 마을 위쪽 박쥐굴, 금낭굴, 상대굴 등 은신처.
눈비 또는 한겨울 칼바람을 피하기엔 아주 적당한 장소

많은 빨치산들이 살다시피 했던 곳이 선녀굴 근처

갑자기 개짖는 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이어 고막을 찢어낼 듯한 총소리가 천지를 진동
총소리와 함께 개짖는 소리도 동시에 뚝 끊어졌다.

세 사람의 이마에서 땀이 송송 맺혀지기 시작했다.
그 칼빈 총소리는 분명 공비의 소행이라 확신한 탓.
잠시후 선녀굴 가파른 바위위에 물체가 어른거렸다.

문영만과 지동식의 카빈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바위 위 검은 물체가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무 사이에서 어른거린 물체는 분명 사람 같았다.

선녀굴 바위에 총알이 튀며 불꽃이 팽팽 돌았다.
안내자인 허정갑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세 사람의 등에서는 김이 모락 모락 피어 올랐다.

엎드려 쏴 자세로 약 30분이 시간이 흘러갔다.
누구인가 총맞고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졌는데
선녀굴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겁이 났다.

짙은 산그림자가 조금씩 아래로 흘러내렸다.
주변에서는 억새와 싸릿대를 스치는 바람소리.
공비들이 자리를 옮겨 공격할 것만 같은 불안감

세 사람은 선녀굴 반대쪽으로 미끄러지듯 도망쳤다.
산죽 비트에서 총알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몇년 간 조용했던 선녀굴의 인근에서 요란한 총소리
우남마을, 세동마을, 송대마을 추성마을, 광아리 마을
등지에서는 주민들이 불안감에 몸들 바를 모르고 있었다.

선녀굴로부터 약 2km 아래에 위치한 송대 마을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근 채 알수 없는 불안감
그날 문영만과 지동식은 공비사살 사실을 신고.

이미 날은 저물었기에 다음날 새벽에 비상 총출동
선녀굴 주변지역 수색작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 김희준, 이은조, 이홍희, 지동선,
이용순, 이재봉,정순덕이 뭉쳐 다니다가
김희준, 지동선은 1954년 10월쯤 사살되고,
정순덕 이은조, 이홍희가 지리산을 헤멘다더라. "

" 전쟁이 끝난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빨갱이 놈들이 지리산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

" 정순덕 이은조 이홍이 이 세 놈 뿐입니더.
셋만 잡으면 더 이상 빨 갱이가 없는기라예 "

만약 정순덕을 사살했다면
보상금이 다른 빨치산 보다
훨씬 더 비싸다고 알고있었다.

정순덕은 1933년 경남 산청군 삼장면 매월리에서 출생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성석조씨와 열 여섯에 결혼
남편은 마을에 진주했던 인민군에게 포섭 당해 빨치산

그해 9월 그녀는 남편을 찾아 지리산 도장골로 입산.
1951년에서 1953년까지 지리산 진양군 유격대에 편입
1952년 대성골 전투에서 남편의 전사를 확인하게 되고,

1953년 노영호 부대에 편입되어 덕유산 기백산, 월봉산,
금원산, 황석산, 괘관산을 거쳐 다시 지리산으로 활동무대

'정순덕 여인의 본명은 호적 상으로는 정순점.'

1950년대 삼장면 내원골은 지리산 오지 중 오지.
당시 17살이면 요즘 여고 1학년 수준의 정신 연령.
당시 지리산 주민들은 공산군이 들어오면 그들을 환영

국군이 들어오면 반기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빨치산에 포섭 될 수 밖에 없었고
경찰들은 그 가족들에게 많은 고통을 가했으리라.

남편이 그리워 정순덕은 결국 산으로 들어갔고
그녀도 진양군 유격대 일원 빨치산이 되고 만다.

나중에 남편이 대성골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빨갱이보다 더 열렬한 빨갱이가 되어 버렸던 그녀.
6.25 전란 중에는 좌익과 우익 둘 중 하나를 선택

그녀의 남편 성석조는 우익을 선택할 권한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좌익의 편에 선택되어졌던 남편의 운명
정순덕의 운명도 함께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비극

" 햐! 그놈들! 지독한 놈들이제.
쏙밭재나 신밭골 근처 목기 나무꾼들 움막집
선녀굴, 독 바위 밑의 박쥐굴 금낭굴, 상대굴

겨울엔 납작한 돌에다가 불을 지펴 달군 후에
모포로 감싸 깔고자면서 겨울를 견뎌 낸다더군.
정순덕이가 선녀굴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카던데. "

선녀굴 입구는 작은데 그 안은 살림해도 될 공간.
" 그런데 12년 동안 산속에서 무얼 먹고 살았을까? "

" 가을에 벼이삭을 훑어 큰 소주병에 저장했다가
긴 꼬챙이로 한나절 내내 비벼 대면 한 주 먹의 쌀
소금 간을 해서 죽도 해먹고, 밤 버섯을 볶아도 먹고,

보리에 쌀을 섞은 주먹밥을 소금에 찍어 먹기도 하구,
송이버섯, 두릅, 더덕, 때로는 곰이나 산돼지를 사냥
6.25가 끝날 무렵 동네에서 식량을 많이도 빼앗아 갔지.

그 놈들은 쌀이나 고기를 절대 지고가지 않고
동네 젊은이들에게 강제로 짐꾼 노릇을 시켰지."

수색대는 칼빈 총을 든 사찰 경찰과 경찰들은 앞장
나머지 대원은 멀찌감치 뒤따르며 선녀굴 근처를 수색
마침내 총에 맞아 숨진 사냥개 한마리의 시체를 찾았다.

순간 대원들은 개가 있는 주변으로 우르르 모였다.
선녀굴 입구에는 바위 틈새에서 나오는 샘물이 있다.
6.25 전후에는 선녀굴이 빨치산 소굴이나 다름 없었다.

산불에 타다 남은 나무 뿌리와 삭정이가 있고
그 아래 시커멓게 그을린 개가 쳐박혀 있었다.
선녀굴에서 능선 하나 사이에 가깝게 '독바위'

그 바위 위에 올라서면 엄천강은 물론 함양읍과
멀리 왕산과 산청 주변까지 훤히 보이는 곳이다.

수색대는 독바위를 뒤로하고 배바위 주변을 수색
더 아래로 내려와 망바위 위에 서서 주변을 탐색
노장대 근처의 박쥐굴, 금낭굴, 상대굴까지 수색.

지리산에서 찾아보기가 힘든 박쥐 떼를
노장대 근처 박쥐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빨치산들이 몇년간 기거하면서 불을 피워
박쥐가 사라졌다가 박쥐굴에는 다시 박쥐떼
동굴 천장에 더덕 더덕 붙어 오수를 즐기는듯.

6.25 이전에는 숯 꾼들의 움막터나 목기 생산지.
6. 25 이전엔 27가구까지 살았다는 노장대 마을
빨치산 때문에 소개령에 의해 주변 마을로 분산

'우남, 세동, 송대, 동강, 운서, 모전 마을'

지친 수색대들은 선녀굴 동굴 입구의 샘물을 들이켰다.
보상금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문영만 지동식 허정갑
마을까지 내려올 동안에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서 내려가던 마을 향토 방위대 대원들의 불평 불만.
뒷쪽 3 사람에게 연거푸 들려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1962년 2월까지 선녀굴 일원에서 숨어살던 정순덕 여인.

1963년 11월에 산청군 내원골에서 이홍이가 사살되고
대퇴부에 총맞고 생포된 정순덕이 증언한 내용을 보면
당시 선녀굴에서 사살된 빨치산은 '이은조'로 밝혀졌다.

그녀가 당시 이은조 시신을 땅속에 매장.
산청 등지의 산골을 전전하며 숨어산 것.

빨치산 소탕 작전이 수없이 전개될 때마다
산청, 남원, 함양 쪽 지리산을 오고 가면서
1962년 2월까지 들짐승처럼 살아야 했던 그녀.

1963년 11월에 산청의 내원골에서 생포되고,
비전향 장기수로서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된다.

2004년 4월 1일 파란만장하던 일생을 마감한 그녀.
20대 꽃다운 나이를 거의 선녀굴에서 보낸 정순덕.
휴천면 송전리 송대 마을 뒷산 선녀굴에 얽힌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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